성씨(姓氏)별 유전자(gene) DNA 하플로그룹(Haplogroup)SNP 관계 정리
본문 바로가기

국가/성씨

성씨(姓氏)별 유전자(gene) DNA 하플로그룹(Haplogroup)SNP 관계 정리

혈족(血族) 이름인 성씨(姓氏) 성(姓)나라는 선대조(先代祖) 후세손(後世孫) 직계(直係) 위 아래를 구분하는 (氏)수(手)손 1세대(世代)는 부부(夫婦) 아(丫)가락 양()들 방계(傍係) 아우(丫友)벗들과 ()할(㿣)부모(父母)가 현 세상(世上)을 같은 새(集)둥울(㪳乙)에서 면(宀)움집에서 키우는 시(豕)돼지 = 돈(豚)돼지고기를 금(金)으로 바꿔 저축한 전(錢)돈 = 경제공유하며 사는 가족(家族)들이 집(雧)새떼 둥울(㪳乙)무리 짓고 마을(嬤乙)에 삽니다.

 

농경 정착하는 신석기 시대가 되면서 면(宀)지붕 아래서 경제 공유 시(豕)돼지 키우며 함께 사는 족(族)무리 가족(家族)이 생겼고, 어머니가 살던 지역 강(江)에서 따온 가족 이름이 성(姓)이다.

 

시조(始祖) = 여자가 나라를 세운 조상이란 뜻, 태초에 나라를 세운 여신 엄마(㛪麻)삼계(三契) 할미 어미 딸과 음양 부부1 쇠 + 자녀4 금= 5 오행성(五幸星) 질서(秩序) 세운 옥황(玉凰)상제(商第) 루황(婁凰)새, 서황마루(西凰麻婁)가 음양(陰陽) 삼계탕(蔘鷄湯) 황(凰)새(鳥)조(朝)아사달(阿𣩠達) 나라 세웠고, 오성취루(五星聚婁) 나라 경영 고대부터 현재 한국 서울(𠧜鳦=西蔚)에서 엄마(㛪嬤)들이 하고 있다.

 

(女)글자 뜻, 일(一)한, 하늘과 땅 맞닿은 사이, 곳, 별(丿)삐침은 다른 차원 세상, 견(𡿨)도랑, 생(𤯓)양(羊)삶 이승(伊乘)과 죽(竹鬻)음(陰)그늘 저승(箸乘)을 연결하는 도랑이란 뜻, 아사달, 죽達삶羊 상양(商羊)새 = 황(凰)새

 

고대에는 아기를 안고 있거나 있을 사람 녀(女)계집 낭(娘)아가씨는, 자(子)아기를 생(生)낳아 성(姓) 가족과 국가인 나라를 건국 창조하는 사람이고, 女가 면(宀)집 아내(安)편안히 아기 키우며 생존할 수 있도록, 전(田)밭 갈 력(力)힘 있는 남(男)사나이 민(民)노예가 항산(恒産) 안주인(安主人)을 부양(負良)받침하고, 생산한 양식(良食)을 외침으로부터 지키는 랑(郞)사나이는 백(白)엄지 능력있는 인(人)사람 바깥 주인 백(伯)맏이로, 가족과 함께 부모 제사를 지내는 사람 제(帝)임금이고, 성주(姓主)는 여왕개미인 종부(宗婦)로, 일개미(男)와 병정개미(郞)는 여왕 개미를 편안(便安)한 량(良)밑받침하기 위한 존재로, 기능을 상실하면 도태된다.

 

면(宀)지붕 아래 녀(女)계집이 있으면 안(安)평안하다 생각하는 이유는, 어머니가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고 형제자매들과 분쟁 조정도 어렵다. 아내가 없으면 가족이 멸족할 수 있는 위험한 상태기 때문에, 종족(宗族)이 생존 지속 가능한 여자가 내집에 있는 안(安)이 평안한 것이다. 가족 여자중에 가장 윗 어른을 안주인(安主人)으로 부르고, 종(宗)은 시(示)보일, 제단을 차리면 죽은 부모 신(神)혼백이 보인다는 뜻, 면(宀)지붕이 있는 부모 제사를 지내는 집이란 뜻이 종(宗), 죽은 부모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자기 것이라 추(帚)비를 들고 열심히 청소하는 녀(女)어머니 종부(宗婦)다.

 

농사를 짓게 되면서, 흉년이 되면, 가족이 생존을 책임지는 능력있는 백(白)엄지 인(人)사람 백(伯)아버지는 자녀들을 이끌고 다른 지역 가족을 공격 약탈하고, 민(民)노예를 잡아와 노동력 착취했는데, 전쟁 과정에서 주로 사망하는 것은 여자가 아닌 남자로, 자연 출생 남녀 성비 1:1 보다 남자가 부족해지면서, 힘있는 남자는 많은 부인을 둔 일부다처(一夫多妻) 가족(家族) 환경이 조성됐고, 수많은 자녀를 출산 지역을 다스리는 호족(豪族)이 됐다. 세운 기둥위에 판을 올린 시(示)를 건(巾)천으로 덮어 제단을 세운 것이 제(帝)임금으로, 호족 울타리 역할하며 부모 제사를 지낼 능력있는 남자 백(伯)이다.

 

며느리 적(嫡)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첫번째 처(妻)아내를 뜻하는 것이 아닌, 다른 호족이나 국가와 협력 한나라가 되는 화친 혼인한 힘있는 부인을 뜻하는 것으로, 보통 첫번째 부인 자녀들이 먼저 장성 힘을 갖으면서 계승권 다툼이 생긴다. 녀(女)계집, 적(啇)밑둥은 제(帝)임금, 'ㅂ'제사 그릇이 합쳐진 글자다. 어머니가 사망하면 성(姓) 종부(宗婦)는 며느리 적처(嫡妻)가 계승, 남편 또는 아들인 제(帝)임금 제사를 주관하고, 후처(後妻) 씨(氏) 자녀들은 어머니 새 성(姓)을 창성(創姓) 시조(始祖)가 되는 것이 모계(母係) 성씨 가족으로, 같은 아버지 후손인 자녀들도 어머니 성씨가 다르면 다른 가족이라 혼인했다.

 

아버지가 같은 대종(大宗) 성(姓)을 중심으로 소종(小宗) 씨국(氏國)이 군사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국가(國家)다. 공통분모 아버지 제사를 지내면서 단합할 수 있는 것은 교(敎)가르침으로, 어머니가 다른 형제자매들 문제 상충되는 해법, 공정하게 선택하는 방법이 아버지 뜻을 묻는 효(爻)점괘로, 자(子)형제자매들이 점친 공정한 결과 아버지 뜻에 따르는 것이다. 공정한 결과에도 승복하지 않으면, 복(攵)칠, 추방하거나 처벌이 뒤따르는 것이 종교(宗敎)인데, 같은 핏줄인 만큼, 인정(人情)이 있다.

 

인(人)사람이 다른 가족국가와 전쟁에서 승리하면, 제(帝)임금은 지역 땅과 민(民))노예를 자기 친족들에게 나눠 점령지역 제후(帝侯)로 임금 아래 벼슬로 분봉하면, 노예를 감시 약탈하는 사람 주인(主人) 왕(王)임금이 되고, 임금은 왕위에 백(白)엄지를 올려 국가(國家) 울타리 백(伯)인 최고 임금 황제(皇帝)가 된다.

 

약소국이 강대국에 반란한 주(周)나라 때부터 자기 친족을 점령지역에 후(侯)신하로 배치하는 성별이 남자였고,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분할 배치한 희성(姬姓) 친족들이 지역 이름대로 씨국(氏國) 시조(始祖)가 되면서, 부계(父係) 성씨를 뜻하게 됐고, 성씨를 갖고 있다는 것은 민(民)노예가 아닌 인(人)사람이란 뜻과 함께, 큰 벼슬을 하사받은 귀족 분봉 지역 본관(本貫)을 중시하면서, 분파(分派)로 구분 성씨를 바꾸지 않게 된 것이 중국 화하족 성씨 구조다.

 

작은 주나라가 큰 상나라를 점령했고, 약하기 때문에 보복 당할까 불안했기 때문에 감시자를 왕으로 파견한 것으로, 화하족 하나라를 멸망시킨 큰 상나라는 강했기 때문에 감시자를 파견 배치하지 않았고, 내가 감시 약탈하지 않아도 노예 스스로 갖다 바치는 훨씬 편한 조공(朝貢)으로, 정한 날짜에 정한 패(貝)돈과 공(工)특산품이 정(正)바르게 맞지 않는 족읍(族邑)은 복(攵)칠, 기마대를 보내 조정(朝政)했기 때문에, 상나라 수도 조(朝)를 계승하는 어(魚)물고기 잡고 양(羊)양치던 북방 유목민 백적(白狄) 지역 선(鮮)이, 요하강 상류 북쪽 요서에 있는 조양(朝陽)으로 도망가 조선(朝鮮)을 세웠기 때문에, 중국 주나라와 달리 모계 성씨 종(宗)이 유지된 것이다.

 

부계 성씨는 같은 아버지 형제자매는 혼인할 수 없지만, 모계 성씨는 같은 아버지라 해도, 어머니와 며느리 여자가 종주(宗主)고, 남자는 종(宗)에 딸린 혼자선 생존할 수 없는 존재기 때문에 다른 어머니 자녀들과 혼인할 수 있는 차이가 있고, 신라시대 갈문왕, 태조왕건 후처 자녀들은 혼인했는데, 고려 중기부터 중국과 교류하면서 중국 부계 성씨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신라시대 모계 성씨 혼용된 태조왕건 국조가 오리무중 알 수 없게 됐다.

 

모계 성씨 적서(嫡庶)는 각자 자기 가족을 대표하는 백(伯)으로 어머니 성(姓)을 잇는 적(嫡)이기 때문에 불평등이 없는 대등한 관계인데, 부계 성씨 적서는 적(嫡)은 가족을 대표해서 국가(國家) 자산 분배 국정(國政)에 나설 수 있는데 비해서, 서(庶)는 같은 가족 머리가 둘이 될 수 없어 백(伯)이 될 수 없는 불평등 을이 됐다.

 

한국어 말소리와 한자는 수천년전 모계 사회 때부터 형성되고, 소리 모양 한글 뜻 모양 한자는 음양오행 원리에 맞게 제작됐다. 한글 'ㅇ' 어미 둥울안 뜻, 둥우리 울껍질 밖 알 지식, 안에 담긴 것이 얼, 'ㄴ'된 현재, 'ㄹ'될 미래, 어(漁물고기 잡을)?가 될 얼이다.

 

'ㅅ'은 스다, 서다, 슴 섬, 스 서, 저세상에서 이세상에 올라 '서'뜻이고, 저(底밑 著나타날)가 'ㄱ'결혼 'ㄴ'된 'ㅁ' 나라 사벽 선 모(母)어미 둘 한집 두방에 서있고, 어미 아래 저가 결혼한 적(摘)딸이다. 즉, 적자(嫡子) = 큰 어미 따를 옳을 손 딸 = 며느리다. 모계 사회 = 오른손 딸, 부계 사회 = 오른손 며느리(面낯,  乙새 42 사이 鳦제비 = 아비들 임금 理다스릴 열 손발가락중 으뜸 오얏) 뜻, 또다른 며느리는 오얏나무 사위=아들 발이다.

 

동성동본(同姓同本) 같은 성(姓)에 뿌리를 둔 형제자매는 혼인 금지하는데, 어머니가 다르면 어머니 이름 성(姓)이 다르므로 같은 혈통이 아니며, 족보에 서자 이름도 올리지만, 서자는 아버지의 적처(嫡妻) 족보인 성(姓)에서 분파(分派) 자기 적처(嫡妻)인 아내 자녀들은 새 성(姓)인 씨(氏)=파(派) 다른 가족 족보를 시작 이름을 올리는 자신은 시조(始祖), 파조(派祖)가 된다.

 

동본(同本)은 다른 가족 국가를 침략 정복하면, 제(帝)임금이 지역을 분할 땅과 민(民)노예를 친족들에게 나줘주고 정복 지역을 감시하는 제후(帝侯) 약탈하는 왕(王)임금으로 분봉(分封)하면서, 왕(王)임금위에 백(白)엄지를 올린 국가(國家)를 대표하는 황제(皇帝)가 되는데, 황제의 권위로 임명된 왕(王)임금이 시간이 흘러 지역민에 동화 분봉한 황제(皇帝)국가 중앙과 약화되면서 다른 국가가 된다. 가족이름 성씨는 국가(國家) 성격도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역을 나눠 분봉하는 큰 벼슬을 받게 되면, 지역 이름에 따른 성씨가 생기게 되는 것이 본관(本貫)이다. 분봉 초기엔 국명(國名)과 왕실 성(姓)이 다르지만, 나라가 망하면, 적자(嫡子)는 망한 국명(國名)을 성(姓)으로 쓴다. 즉, 적자(嫡子)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성(姓)을 바꿀일이 없는데, 성(姓)이 어머니 혈통을 뜻하는 것이라 아버지를 뜻하는 나라가 망해도 바꿀 필요는 없지만, 이름은 내가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것이고, 일부다처제 가족(家族)이 호족(豪族)으로 성장 성벽을 갖춘 족읍(族邑)이 국(國)나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면서 바뀐다.

 

본관은 국가(國家)에서 지역을 다스리는 벼슬을 내린 것이므로 본관(本官)으로 써야 맞겠지만, 관(貫)꿸 을 쓴다. 관(毌)뚫을, 패(貝)조개=돈, 동전에 구멍 뚫린 엽전 꾸러미가 관(貫)이다. 매관매직으로 생긴 단어라 성씨를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는 아닌데 쓴다.

 

종(宗)은 면(宀)집, 시(示)보일, 제단에 제물을 차리면, 죽은 부모 신(神)혼백이 나타나 살아있을 때처럼, 어머니가 다른 형제자매 가족 상충되는 문제 해법, 공정한 효(爻)점괘로 묻고 선택, 복(攵)따르면서, 자(子)가족이 단합하는 것이 교(敎)가르침으로, 제(祭)는 향을 피워 하늘로 올라간 혼(魂)얼을 부르고, 모래를 담아 피를 꽂은 모사 그릇에 술을 부어 땅으로 내려간 백(魄)넋을 불러 아버지 혼백을 모시는 것이고, 사(祀)는 아버지의 가족 뜻을 다른 어머니의 가족들에게 공정한 결정하고 성(姓) 국가(國家) 씨(氏) 백성(百姓)이 따르며 단합하는 교(敎)를 행하는 것으로, 임금이 제사를 지내는 집 종가(宗家)의 역할이다.

 

국가 대소사를 죽은 조상 신(神)혼백을 모시고 묻는 제사는 성씨 왕실 가장 큰 어른인 종부가 주관하는 것이 본질인데, 행사에 치중하면서 허황된 귀신에게 묻는 무당이 하는 일로 변질됐다.

 

구(口)입, 마을이란 뜻도 있고, 마을을 둘러싼 울타리가 있는 마을에 혹시 모를 외침으로부터 마을을 지킬 과(戈)창을 든 군대를 갖춘 지역을 혹(或)이라 하고, 족읍(族邑)이 도시급으로 성장하고, 도시를 둘러싼 위(口)에울 성벽을 갖춘 것이 국(國)나라다. 아버지가 같은 대종(大宗) 성(姓)을 중심으로 주변 수많은 씨(氏) 소종가(小宗家)들이 죽은 아버지 상제(上帝) 제사를 함께 지내며 군사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초기 국가(國家)다.

 

인人사람이 다른 가족과 전쟁에서 승리 민(民)노예를 잡아오면, 제(帝)임금은 자기 친족들에게 땅과 노예를 나눠주는 분봉(分封)하면, 노예를 약탈하는 사람 주인主人 왕王임금이 되고, 제(帝)임금은 백(白)엄지를 왕(王)위에 올린 황제(皇帝)로 주권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상제(上帝)의 적자(嫡子) 천자(天子)로 천황(天皇)이라 한다.

 

민(民)노예로부터 얻은 자(子)는 얼자(孼子)로 인人사람인 적서(嫡庶)와 구분했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던 홍길동은 서자가 아닌 얼자고, 자(子)는 아들과 딸을 모두 뜻하는 글자다.

 

처(妻)아내와 다른 부(婦)아내는 여(女)계집+추(帚)비= 주인이라 자기 것 열심히 청소하는 여자란 뜻으로, 종부(宗婦)는 가문의 실질적 주인인 종주(宗主)를 뜻한다.

 

초기 성씨=국가의 임금은 같은 혈통으로, 다른 혈족을 공격 잡아온 노예를 농민으로 부리는 족읍(族邑)형태로, 혈연 관계 연합체 형태가 상(商)나라까지 유지 됐고,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周)나라때부터 주족(周族) 희성(姬姓) 친족을 중국 전역에 감시자인 낙하산 왕으로 분봉(分封) 임명하면서 왕과 백성(百姓) 혈통이 달라지게 됐고, 성씨를 갖고 있는 것은 같은 혈연이란 뜻 + 분봉된 왕 큰 벼슬을 한 귀족이란 뜻으로, 노예는 성씨가 없으며, 주인이 죽을 때 함께 순장하는 이유는 그래야 주인을 배신하지 않고 충성하기 때문으로, 주종관계는 주인에게 예속된 개, 고양이 같은 재산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민(民)노예는 가축처럼 이름은 있지만 인(人)사람과 달리 성씨가 없고, 백성(百姓)은 인(人)사람 성씨가 100가지도 넘게 많은 큰 국가란 뜻으로, 정복당한 2등 국민인 노예는 백성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 취급받지 못하니까, 내 나라를 외침으로부터 스스로 지키는 자주국방 황제국 주권 국가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서자(庶子) 사례는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자기 모계 가족 3,000명을 이끌고 황하(黃河) 중류지역에 살던 유웅(有熊)곰나라를 평정하고, 서쪽에 있던 호(虎)호랑이 나라를 평정하면서, 호랑이와 곰을 동굴에 가두고 마늘(점령)을 먹였고, 화하족 호랑이 산악지역 한중(漢中) 북쪽에 있는 태백산(太白山) 뜻은, 단수(檀樹)에 제단을 세우고, 죽은 부모 신(神)혼백 정신 혼(魂)얼이 올라간 하늘 태상황(太上皇)에게 단군(檀君)이 됐슴을 알린, 도읍 주변에서 백(白)엄지=가장 높아 하늘에 가까운 태상황을 만나는 산이라 뜻입니다. 환웅은 BC2333년 단국(國)을 세웠고,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환인(桓因) 구이(九夷) 백(伯)맏이들이 돌아가면서 단군을 맡았습니다. 융적(娀狄) 서쪽과 북쪽 유목민 화친 혼인 후손으로 태행산맥 주변에서 주로 살던 간적(簡狄) 자(子) 후손 설(契) 후손이 세운, 상(商)나라 왕실 성(姓)에서 파생된 씨(氏) ()는 상나라 마지막 제(帝)임금 신(辛) 주(紂) 아버지의 아버지의 서자(庶子)로, 상나라 마지막 수도 서울 가(歌)노래하는 조(朝)가 BC1122년 주나라 반란에 유린되자, 살던 백적(白狄) 지역에서 어(魚)물고기 잡고 양(羊)양 키우며 살던 ()에서 단군 수도 조(朝)아침=아사달을 조양(朝陽)으로 이동해서 조선(朝鮮)을 시작했고, 주(周)나라 주공단 삼감의난 평정 동정으로 태산(太山) 주변 황해 주변에 세를 형성하며 상나라와 대치하던 중국 본토를 상실한 단군은, 동쪽으로 이동해서 단군조선을 이뤘습니다. BC300~BC249년 연나라 요하 침공으로, 유목민 조선은 만주로 이동해서 조선 창업자 (夫)사나이 (餘)를 국호로 조선을 계승했고, 상나라 달력을 사용했습니다. 동쪽에 있던 단군은 평양으로 이동 100년후 연나라에서 위장 귀순한 위만에 속아 평양을 뺏겼고, 해로를 따라 남하해서 한(韓)을 세웠는데, BC17년 부여에서 남하한 남부여 백제 온조(溫祚)와 전쟁을 시작 망하면서 큰아들은 망한 나라이름 한씨(韓氏)가 됐고, 둘째 아들은 기씨(奇氏), 셋째 아들은 선우씨(鮮于氏)가 됐습니다. 나당 연합군에 백제가 망한 후 마지막 태자는 당나라로 끌려가 여성(餘姓)을 서씨(徐氏)로 바뀐 것이 공통 글자에 남아있습니다. 동부여 금와왕의 서자인 주몽 대소(帶素)등 본처 일곱 아들 핍박을 피해 졸본으로 도망 지역 호족의 딸인 소서노와 혼인 고구려를 세웠다. 주몽에겐 본처 예씨가 있었고, 적장자 유리명왕이 졸본으로 오면서, 서자가 된 온조(溫祚)는 어머니 소서노, 형 비류와 함께 미추홀에 정착 백제를 세웠다.

 

성(姓)에서 씨(氏)로 바뀌던 때 적서(嫡庶)는 각각 자기 가족 백(伯)맏이로 대표할 수 있었고, 후손들이 자기 성(姓)을 잇는 평등한 관계인데, 성씨를 바꾸지 않고 분파(分派)로 구분하는 때 적서(嫡庶)는 백(伯)맏이로 가족을 대표해서 국가에 참여하는 사람은 적(嫡)만 가능했기 때문에 서(庶)는 차별당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바이칼호 남쪽 설련하(偰輦河)에서 내려 온 것이 북적(北狄) 상(商)나라 시조 설(契)로, 계(契)맺을 뜻은, 소리라 사라지는 중요 말을 나무에 칼로 그어 약속지킨다는 뜻으로, 나중에 만주에 있던 국가 거란(契丹)도 같은 글자를 씁니다. 단군조선은 천신종족이라 주로 높은 지역에 도읍이 있었고, 태상황을 만나는 도읍 주변 높은 산을 태백산(太白山)으로 불렀습니다. (商)나라 수도 서울이 있던 지역 상구(商)언덕 초(艸)풀에 日해와 月달이 함께 있는 때 ()아침은, 일본말로 '아사'로 읽고, 한국인은 언덕에 있는 동네를 ''동네라고 부르고, 단군조선 수도 서울 아사달입니다.

 

상나라 수도 유적이 발굴된 은허(殷墟)언덕이란 뜻이고, 조양(朝陽)볕이 잘드는 높은 지역 언덕에 해당됩니다. 조선은 북방 유목민들로, 적(狄)오랑캐는 화하족(華夏族) 후손인 한족(漢族) 주관에서 본 세계관으로, 왼쪽에 붙어있는 견(犬)개 글자나 선(鮮)고울 글자 뜻이 유목민인 것을 표시하고, 부여를 세운 해모수 해씨(解氏) 해치(獬豸) 해태 전설상의 소같이 크고 뿔을 무기로 사용하는 동물을 다루는 해씨 역시 북방 유목민인 것을 뜻하고, 한반도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에 넓게 성씨가 퍼져나간 맥(貊)북방종족 조선(朝鮮)으로, 예(濊)흐릴, 황해 바닷가를 거점으로 중국 본토를 통일했던 동이(東夷) 환인(桓因)과는 다른 혈통이다. 화하족 황제(黃帝)가 탁록에서 치우천황과 전쟁후 화하족이 성장 하(夏)나라를 세울 땐, 동쪽으로 밀려려나 동이(東夷)가 된 것으로, 환(桓)은 만족 화련 자치주 환인(桓仁)현, 산동성 태산(太山) 동쪽 환태(桓台)현에 흔적이 남아있다. 하나라를 설족(契族) 탕왕이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세웠을때, 황해 주변과 회수(淮水)까지 분포해있던 동이족(夷族)와 전쟁했던 것을 보면, 조선과 단군은 다른 혈통, 화하족 주나라가 중국을 장악하면서 만주로 함께 밀려난 것입니다. 조양시 홍산문화 유적지 하층문화와 달리 상층문화는 유목민 유물과 개도 함께 출토되는 이유고, 그지역 유물 이름엔 화하족을 뜻하는 하(夏)를 쓰는 것은 오류로, 화하족은 황하 중류에 있는 화산(華山)남쪽, 한중(漢中)에서 우한(武漢)=강하(江夏)까지 흐르는 강, 하수(夏水)=(漢水)와 황하 중류지역 남쪽에 있는 희수(姬水)=위수(渭水)까지 그 시기에 화하족은 중국 서남쪽에 살았기 때문에 홍산문화 유적지에 흔적 남길 수 없다. 고대는 동쪽엔 단군 이(夷) 북쪽엔 조선 적(狄), 화하족과 다른 이민족이 사는 땅입니다. 수천년 동안 경쟁하면서 유전자는 섞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한중일 공통 유전자를 서로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게놈

인간 게놈은 한 인간 개체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유전자들과 유전자 바깥 부분을 포함 하는 약 30억 쌍 정도의 모든 DNA 염기 서열을 통틀어 말한다. 인간 게놈은 44개(22쌍)의 상염색체와 2개(1쌍)의 염색체 (X, Y), 그리고 미토콘드리아 DNA 에 나뉘어 유전되고, 아버지 혈통은 Y 유전자, 어머니 혈통은 미토콘트리아 DNA 로 확인할 수 있다.

유전자는 DNA(디옥시리보 핵산)가 담당하고 있다. DNA란 인산이나 뿐 아니라, A(아데닌), T(티아민), G(구아닌), C(사이토신)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는 이중 나선형의 물질이다. 이러한 네 가지 염기 배열에 의해서 유전 정보가 암호화되고 있다.

사람의 유전자 약 2만 개는, 대략 30억 쌍의 염기대의 DNA에 기록되어 있다. DNA의 염기 배열이 어느 유전자에 대응하는지를 조사함으로써 사람의 모든 유전자를 해독하는 것을 “인간 게놈 계획”이라고 부르고 있다.

게놈 해독을 통해 유전자와 병과의 관계도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조울병난청다운증후군에 관한 유전자는 21번 염색체에 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의 생활 습관병은 3% 이상이 유전 요소로 정해진다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어떤 병에 걸리기 쉬운지는 게놈으로부터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전자를 확인하는 이유는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그것을 할 때 약간의 비용을 추가하면 더 상세한 성씨(姓氏)유전자 혈통까지 확인할 수 있다.

 

하플로그룹(Haplogroup)

분자진화(Molecular Evolution)에서 하플로그룹(Haplogroup, 그리스어: απλούς, haploûs, "한겹의, 단일의, 단순한")은 분자 진화 연구에서 단일 핵산염기 다형현상(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변이로 공통의 선조를 공유하는 유사한 하플로타입(Haplotype)의 집단이다. 하플로그룹은 유사한 하플로타입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하플로타입으로부터 하플로그룹의 예측이 가능하다. 또한 SNP 테스트는 하플로그룹을 확인할 수 있다. 하플로그룹은 알파벳을 매기고 또한 분화한 것은 추가적인 숫자와 알파벳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R1b1같은 것이다. Y-염색체와 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그룹은 서로 다른 하플로그룹의 명칭을 가지고 있다. 하플로그룹은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머나먼 선조의 기원과 관련된다.

 

단일 핵산염기 다형현상(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SNP)

DNA 염기서열에서 하나의 염기서열(A,T,G,C)의 차이를 보이는 유전적 변화 또는 변이를 단일 핵산염기 다형현상(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SNP)라고 하며, 스닙이라고 읽는다. 인구집단에서 1%이상의 빈도로 존재하는 2개 이상의 대립 염기서열이 발생하는 위치를 SNP라고 하며 대립유전자형이 5%이상의 빈도로 존재하는 경우 common polymorphism이라고 하며, 1~5% 인 경우 rare polymorphism으로 분류한다.

 

인류유전학(Human Genetics)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는 하플로그룹은 Y-염색체 DNA 하플로그룹 미토콘드리아 DNA(mtDNA) 하플로그룹으로 이는 유전 집단을 정의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다. Y-DNA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오직 부계 혈통을 통해서만 전달되며, 반면에 mtDNA는 어머니에게서 남녀 모두의 자식에게 모계 혈통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그러므로 Y-DNA와 mtDNA는 부모의 유전자 물질 사이에서 혼합없이 대대로 우연히 변이 변화하며 서로 어느 것도 유전자 재조합(Genetic Recombination)이 되지 않는다.

 

인류 (부계) Y 염색체 DNA(Y-DNA) 하플로그룹은 A부터 T까지 알파벳을 매기며 추가로 숫자와 소문자 알파벳을 사용하여 세분화한다. Y 염색체 하플로그룹의 명칭은 Y 염색체 컨소시엄(Y Chromosome Consortium)에 따라 명명되었다. Y-DNA 하플로그룹의 계보는 국제 유전계보학회(International Society of Genetic Genealogy, ISOGG) 웹 사이트에 최신 버전이 업데이트 되고 있다.

 

주요 Y 유전자 하플로그룹

주요 Y 유전자 하플로그룹
한국인 주요 유전자 C, O, N, 한국인 부계 표지 유전자 O1b2-M176

 

한국인 Y유전자 N,O는 K2에 뿌리가 있고, C유전자는 유전적으론 멀지만, 지리적으론 함께 살았다.

 

전세계 Y유전자 이동 역대 흐름

전세계 Y유전자 이동 흐름
한국인 유전자 N O C는 중국에서 북상했다.

 

한국인 Y유전자 가장 높은 비율은 O, C, N 순이고, C는 주로 경상도, N은 제주도에 많다. 최근 수천년은 황하 북쪽 태행산맥 주변에 거주했기 때문에 북방계가 맞지만, 출발은 중동에서 인도 티벳 경로 중국에서 함께 살다 북상했다. 북쪽에서 아무리 찾아도 없던 신단수 태백산 지명을 이 Y유전자 이동 지도를 보고 중국 서안(西安)시 남서쪽에서 찾았다.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 성(桓姓) 단씨(檀氏)를 말하는 것으로, 단(檀)나라 임금 BC2333년 단군(檀君)을 시작했던 신단수(神檀樹)는 태백산太白山 아래에 있다고 했다. BC1122년 주(周)나라 서기(西岐) 반란으로 상(商)나라가 BC1046년 망하기전, 상나라 말기 숭후호가 상나라 왕에게 주문왕을 고발했는데, 숭후호는 사람 이름이 아닌, 숭(崇)현 지역에 사는 호족(豪族)으로 호(虎)호랑이 혈족(血族)인 것을 말하고, 태백산 동쪽 400Km 떨어진 낙양 강 상류 지역에 있던 숭(崇)은 하(夏)나라 첫 수도였다. 호족(族)은 단군신화에 나오던 호랑이를 뜻한다. 화산(華山)에 뿌리가 있는 하(夏)나라 화하족 시조 황제(黃帝) 뿌리인 유웅족(有族)이 세운 하(夏)나라가 번창했기에 곰은 사람이 되고 호랑이는 사람이 못된 것으로, 천황국 단군 통치 아래있던 황하(黃河) 중류 지역에 번창했던 화하족 유웅 황제(黃帝)가 반기를든 것이다. 단(檀)은 상(商)으로부터 주검을 뜻하는 시(尸)로 불렸고, 왕(王)임금과 합쳐진 글자가 윤(尹)다스릴, 국(口)나라와 합쳐진 글자가 군(君)임금이다. 단(檀)이 중국 전지역에서 자생하는 청단(靑檀)이란 점에서, 이전 시대에 천하를 다스리던 단군이 하-주 시대엔 쇄락하던 황제국일 가능성 있다. 왕실 희성(姬姓) 희수(姬水)가 중원에 뿌리가 있는 주(周)나라 조상들은 여러 지역을 이동했고, 오르도스(鄂尔多斯)에서 유목민족 약탈을 피해 남서쪽 기산(岐山)으로 이동하면서 주(周)나라 기틀을 다졌고, 인구는 상나라 3단계 공후백 관작 등급 최하 백(伯)등급 인구 15만 작은 족읍이 서기백(西岐伯) 희창 관작으로, 주문왕은 희창 사후, 주나라가 서면서 6대까지 왕으로 추서된 것이다. 주무왕은 반란에 성공했지만 감히 역성 혁명하지 못했고, 상나라가 망하는 과정 76년동안 허수아비 왕으로 존속됐다. BC1046년 삼감의 난을 3년만에 평정했고, 주공단의 상나라 유민 노예 분할 사민(徙民)정책 피해 상나라 800여 성씨가 먼저 요하로 대규모 이동했다. 요하에 먼저 살고 있던 예(濊)=단(檀)임금인 단군(檀君), 맥조선(貊朝鮮)=기자(箕子)와 동이(夷) 근거지 태산을 잃고 밀려난 예(濊)=단군(檀君)이 연대한 것이 단군조선으로, BC300년까지 유지됐다. BC300~249년 연나라 진개 요하침공 요하 상실 평양 이동 - BC194년 연나라 위만 위장 귀순 반란으로, 예맥족은 북쪽에는 조선에서 파생된 부여(扶餘), 남쪽에는 단군에서 파생된 삼한(三韓)으로 분단됐다. 한반도에 갇힌 한국사(韓國史)는 이때부터 시작되고 한민족(韓民族)은 삼한(三韓)을 말하는 것인데, 반만년 역사를 반토막내는 단편적인 역사다. 한국인 유전자는 아래 6개 Y유전자가 주류, 단일 민족이 아니며, 따라서 내 역사와 친구 역사는 다를 수 있다. 초기 국가 성씨=국가 이름은 타칭과 자칭 2가지가 존재할 수 있고, 이름은 남에게 불리는 것이 시작이고, 자칭으로 변했다.

 

Y-DNA Haplogroup Tree 2019-2020

 

한국인 주요 유전자 C2-M217, N1a1a-M178, O1b2-M176, O2-M122, O2a2b1-M134, O2a2b1a1-M117, 입니다.
 
 

2019 Haplogroup C Tree

하플로그룹 C는 이란에서 시작해서, 인도를 거쳐 동남아시아로 이동한 그룹이 있고, 한국에 주로 분포하는 C는 중앙아시아로 북상해서 바이칼호에 정착 남하한 C2-M217그룹으로, 관련한 소그드인과 소무구성 성씨가 있다. 

하플로그룹 C 이동 경로

 

C-M217 유전자 전세계 분포도

C-M217 유전자 전세계 분포도
바이칼호 중심 아시아, 시베리아, 에스키모 북아메리카에 분포한다.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가락국(駕洛國)의 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한다. 가야의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의 9명 간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 6개의 황금알이 구지봉에 강림하고 금관 가야의 왕인 김수로부터 유래하였다.

C2a1a3a2~Z43948
 
경주 김씨(慶州 金氏)는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전한다. 2015년 기준 인구 1,888,121명이나 되는 대성이라 분파가 너무 많아 상세한 내용은 링크 클릭해서 보는 것이 낫다. 김알지 혈통으로 표시되는 다른 지역 본관은 다음과 같다.
  • 강릉 김씨(江陵 金氏) : 시조 김주원(金周元)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후손으로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해졌다. 명주(溟州)는 지금의 강릉(江陵)이다.
  • 선산 김씨(善山 金氏) : 시조 김한충(金漢忠)은 벼슬이 추밀원사(樞密院使)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였으며, 시호는 원평공(元平公)이다. 본래 경주인(慶州人)으로 신라(新羅) 원성왕(元聖王) 후손이라 한다.
  • 선산 김씨(善山 金氏) : 시조 김선궁(金宣弓)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벼슬이 대광(大匡)시중(侍中)에 오르고, 시호가 순충공(順忠公)이다.
  • 광산 김씨(光山 金氏) :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왕자로 나라가 장차 어지러울 것을 예지(叡智)하여 무진주(武珍州) 서일동(西一洞) (광주광역시 인근 담양군)에 거처를 정하였는데, 이후 후손들이 이곳을 관향(貫鄕)으로 삼았다.
  • 연안 김씨(延安 金氏) : 시조 ‘’‘김섬한’‘’(金暹漢)은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의 후예로, 고려 명종(明宗) 때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역임하였다.
  • 순천 김씨(順天 金氏) : 시조 김총(金摠)은 신라 종성(宗姓.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으로 궁예(弓裔) 때 인가별감(引駕別監)을 지내고 평양군(平陽君)에 봉해졌다. 사후(死後) 향인(鄕人)들이 순천부(順天府) 성황신(城隍神)으로 추앙하였다. 순천(順天)의 별호를 평양(平陽)이라 한다.
C2b1a-CTS4590 경주김씨 태사공파 상촌공파
 

완풍대군파(完豊大君派) 이원계(李元桂) 완산군(完山君), 1330년 ~ 1388년 10월 23일)은 고려 시대 후기의 무신·군인·관료·시인이며 환조 이자춘의 아들이자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이복 형으로 이름은 이원계(李元桂), 호(號)는 불사재(不思齋)이다.

C2b1a1-CTS2657

 
정선 전씨(旌善全氏) 시조 전훤(全愃)은 전섭(全聶)의 8세손이다. 그는 백제의 대광공주(大光公主)를 배행하고 신라에 들어가, 신라 성덕왕(재위 702년∼737년) 때 전법판서(典法判書)를 지내고 정선군(旌善君)에 봉해졌다.
C2b1a2a-F1319
 
 

 

2019 Haplogroup N Tree

Haplogroup N 전세계 분포
유전자 N계열은 북유럽 시베이라 바이칼호 주로 북쪽에 분포해 있다.

 

 

N1a1a-M178 핀란드60%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40% 에스토니아 35%, 투르크계 야쿠트족 90%, N계열은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북유럽까지 확장 남하한 혈통입니다.

 

진주 김씨 (晉州 金氏) :가락계 수로왕 후예 김유신(金庾信)의 아들 김원술(金元述)을 시조로 한다. 조선 인조 때의 진무공신(振武功臣) 김양언(金良彦)이 알려져 있다. 신라계 진주 김씨(晋州金氏)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인 경순왕(敬順王)이 고려에 항복 후 취한 후배 낙랑공주사이에서 낳은 아들 진성군(晋城君) 김종(金錘. 일명 '김추'(金錘)라 한다.)를 시조(始祖)이다.

N1a1a1a1a4a2~A9408

 
밀양 손씨(密陽 孫氏)는 경상남도 밀양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손순(孫順)은 신라 흥덕왕 때의 인물로 효심이 깊어 왕에게 알려져 신라의 국효(國孝)로 일컬어졌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진한(辰韓) 육촌(六村) 중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촌장(村長) 구례마(俱禮馬)가 처음 이산(伊山)에 내려와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의 원조(元祖)가 되었다고 한다. 시조 손순(孫順)은 신라 흥덕왕  경북 경주 모량리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835년(신라 흥덕왕 10년) 손순(孫順)의 효행이 왕에게 알려져 신라의 국효(國孝)로 일컬어졌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삼국유사》에는 손순이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자식을 파묻으려 한 이야기가 나온다. 손순의 장손자 손익감(孫翼減)도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밀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N1a1a3 - Tat+, M178+, F4063+

 

 

장수 황씨(長水 黃氏)는 전라북도 장수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황경(黃瓊)은 통일신라 경순왕 때 시중(侍中)을 지냈다고 한다. 이후 중간 계대가 실전되어 조선 세종 때 영의정에 오른 황희(黃喜)의 증조부인 황석부(黃石富)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N1a2a1a~F1998 양주황씨

 

O-M175 유전자 분포도
O-M175 유전자 분포도

 

O-M175 유전자 하위 계보

 -O1-F265/M1354

   - O1a-M119

   - O1b-M268

     -O1b1-F2320

     -O1b2-P49, M176

  - O2-M122

    - O2a-M324

    - O2b-F742

 

(甘)씨는 중국과 한국의 성씨이다. 중국의 감씨는 크게 네가지로 나뉘는데 최초 상나라에서 계출된 성씨이며, 대부분의 상왕조 가문과 마찬가지로 허난성을 연원을 둔다. 또한 주나라 희성 계열과 제나라 여성 강성 계열에서도 감성이 파생되었다. 고대 하나라에서 계출된 성씨도 있다고 한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감씨는 발해 무왕의 셋째 아들 숙대(叔帶)가 감후(甘侯)에 봉해지고 그곳을 식읍(食邑)으로 하사 받은 사실에서 연유하여 그 땅 이름을 감씨(甘氏)의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회산 감씨(檜山 甘氏)의 시조 감규는 원나라 한림학사로서 1349년(충정왕 1) 공민왕 비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배행하여 고려에 왔다. 그는 고려에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으며, 연릉군(延陵君)에 봉해진 후 고려에 정착하였다. 이후 손자인 평장사(平章事) 감흥협(甘興鋏)을 비롯하여 밀직제학(密直提學) 감소연(甘紹延), 중추부사(中樞府使) 감진요(甘震曜), 이부시랑(吏部侍郞) 감침(甘鍼) 등이 관직에 진출하였다. 감씨는 본래 시조인 감규가 연릉군에 봉해진 이후 15세손 감수화(甘受和) 때까지 연릉(延陵)을 본관으로 해 오다가, 16세손 감철(甘喆)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오르고 회산군(檜山君)에 봉해진 것을 계기로 회산(檜山)을 관향으로 삼았다. 회산은 경상남도 창원시의 옛 이름이다. 창원 감씨, 합포 감씨라고도 한다.
O1a1a1a1a1a1a-F656
 
O1b1a1b1a-F714 청주한씨
 
파평 윤씨(坡平尹氏)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한 공으로 개국통합삼한벽상익찬공신(開國統合三韓壁上翊贊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관직은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으며 소양(昭襄)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O1a1a2a-CTS52

 

정선 (旌善 全氏)는 강원도 정선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전(全)씨의 도시조(都始祖) 전섭(全聶)은 기원전 18년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인 온조(溫祚)가 백제를 건국할 때 마려(馬藜), 오간(烏干), 한세기(韓世奇), 곽충(郭忠), 범창(笵昌), 조성(趙成) 등 9사람과 함께 공을 세워 백제 십제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정선 전씨(旌善全氏)의 시조는 전섭(全聶)의 8세손인 전선(全渲)이다. 전선은 백제의 대광공주(大光公主)를 배행하고 신라에 들어가 봉익대부(奉翊大夫),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올랐으며, 정선군(旌善郡)에 봉해졌다고 한다.

O1b1a2a1-F1759
 
O1b1-F2320(O-K18)
 
하플로그룹 O-M176 또는 하플로그룹 O1b2 인류 Y-염색체 DNA 하플로그룹 중 하나이다. 과거에는 하플로그룹 O2b로도 불렸다. 가장 가까운 하플로그룹 O-K18(O1b1)과 함께 약 26,000~30,000년 전의 최근공통조상을 가지는 것으로 추정된다.한반도, 만주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플로그룹 O-M176 또는 하플로그룹 O1b2
하플로그룹 O1b2-M176은 동북아시아에서 주로 나타나는 Y-DNA 유전 형질로 서쪽으로는 몽골 서부의 알타이 산맥과 자흐친으로부터 동쪽으로는 일본 및 오키나와에 이르는 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 일본인: 약 36% (256/800) 한국인: 약 37% (202/677) 오키나와인: 31% (30/132) 만주인: 34% (45/232)

 

O1b2-M176 유전자는 한국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 한국인 표지 유전자로, 일본에도 높은 비율 보이는 한국,일본 공통 유전자입니다.

 

 

 

O1b2-M176 유전자 상세 계통도
O1b2-M176 유전자 상세 계통도
만주 한국 일본에 주로 분포하는 한국인 대표 유전자.

 

 

해주 오씨(海州 吳氏)는 황해도 해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해주 오씨(海州 吳氏)는 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모시는 경파와 오현보를 시조로 모시는 향파의 두 계통이 있다.

 

해주 오씨 경파(京派)

1401년에 작성된 《해주오씨족도(海州吳氏族圖)》에 의하면 시조는 오인유(吳仁裕)이다. 해주오씨(海州吳氏) 시조 오인유(吳仁裕)는 중국 송(宋)나라의 대학사(大學士)로 984년(성종 3년) 고려에 동래하여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내고 해주(海州)에 정착하였다.

O1b2a1a1-SRY465, CTS713, L682, O1b2a-P49, N1b2-L727, C2c1-M217, C2c1a1-CTS2657, O2a2a1a1-CTS201

 

(裵)씨는 한국의 성씨이다. 진한 개국 설화에 의하면, 사로 6촌(斯盧六村) 중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촌장 지타(祗陀, 只他)는 다른 6부 촌장들과 함께 혁거세 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하였다. 32년 신라 유리왕은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가리부(加利部)를 한지부(漢祗部)로 고치고 배(裵)씨 성을 사성하였다. 정사(正史)에 처음 등장하는 배씨는 신라 성덕왕 때의 상대등(上大等) 배부(裵賦)이다. 경주 배씨(慶州裵氏) 시조 배현경(裵玄慶)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옹립하는데 큰 공을 세워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에 오르고 대광(大匡)을 역임하였으며, 배씨 성을 사성받았다. 그러나 그 후의 기록이 전하지 않아 조선시대 인물인 배충과(裵忠果)를 중시조로 삼는다. 배충과는 의술(醫術)에 능하여 조선 중종 때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에 제수되었으며, 경주처사(慶州處士)의 호(號)가 내려졌다.

O1b2a1a-CTS1204, CTS713

 

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시조 한란(韓蘭)은 928년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정벌하기 위하여 청주를 지날 때 한란은 왕건을 군례(軍禮)로 맞이하고 창고의 곡식을 풀어 하루 동안 왕건의 10만 군대를 배불리 먹였으며, 왕건과 함께 종군(從軍)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청주한씨세보》에 따르면 마한(馬韓) 9대 원왕(元王)의 세 아들 기우량(箕友諒)은 상당한씨(上黨韓氏: 상당은 청주)=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시조가 되었고, 기우평(箕友平)은 고구려로 망명하여 유리왕을 섬겨 북원선우씨(北原鮮于氏)의 시조가 되었으며, 기우성(箕友誠)은 덕양기씨(德陽箕氏: 덕양은 행주)=행주 기씨(幸州 奇氏)의 시조가 되었고, 세계(世系)에서 1세로 삼는 인물은 기문유(奇文儒)의 아들로 고려 인종(仁宗) 때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낸 기우성의 66세손인 기순우(奇純祐)이다. 기자조선(箕子朝鮮)을 건국한 상商왕족 기자(箕子)의 후예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의 침입으로 전라북도 금마군(金馬郡: 익산군의 옛 이름)으로 옮겼다. 선계를 고증할 수 있는 고려 개국공신 한란(韓蘭)을 시조로 삼고 있다. 시조 한란의 둘째 아들 한총례(韓聰禮)가 단주 한씨(湍州韓氏), 5세 한후저(韓候抵)가 평산 한씨, 6세 한원서(韓元諝)가 한양 한씨, 8세 한임경(韓林卿)이 홍산 한씨, 8세 한란경(韓蘭卿)이 양주 한씨, 9세 한연(韓連)이 안변 한씨, 9세 한자희(韓自禧)가 면천 한씨, 9세 한희유(韓希愈)가 가주 한씨, 10세 한공서(韓公瑞)가 당진 한씨, 11세 한유충(韓惟忠)이 대흥 한씨, 14세 한이(韓彛)가 부안 한씨, 14세 한진(韓珍)이 보안 한씨, 15세 한교(韓曒)가 금산 한씨, 9세 한악(韓渥)의 후손 한승정(韓承貞)이 서원 한씨, 9세 한영(韓泳)의 후손 한규지(韓圭之)가 장단 한씨, 한익지(韓翼之)가 함흥 한씨, 한혁지(韓焃之)가 교하 한씨 등으로 분적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원 선우씨(太原 鮮于氏)는 기자조선 기송(箕松)이 2대 장혜왕(莊惠王)으로 즉위하면서 아우인 기중(箕仲)을 우산국(于山國)에 봉하여 조선의 선(鮮)자와 우(于)자를 따서 선우씨(鮮于氏)로 삼았다고 한다. 태원(太原)은 황하 중류 동쪽 지류에 있는 지명으로, 태원과 북원은 큰 뿌리는 같지만, 상세 혈통은 다르다. 상계(上系)를 고증할 문헌이 전하지 않아 고려 고종 때 중서주서(中書注書)를 지낸 선우정(鮮于靖)을 1세조로 한다.

O1b2a1a1-CTS713, A12448 

O2a1b1a1a1a1e1a1a1a-Y46258, 한씨(

韓氏)는 희성(姫姓)을 가졌던 한무자(韓武子) 한만의 일가들이 한씨(韓氏)를 칭하였고, 한원 지역에는 원래 주나라 선왕 때 분봉된 희성 제후 한후(韓侯)가 있었다. 다른 혈통도 있습니다. 곡산 한씨(谷山 韓氏) 시조 한예(韓銳)는 1206년 송나라에서 고려에 들어와 문하시중평장사를 역임하고 곡산부원군에 봉해졌다.

 

평산 신씨(平山 申氏)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이다. 원래 이름은 능산(能山)이었으나 평산(현재의 황해도 평산군)에서 왕건에게 신(申)씨 성을 사성받았다. 그는 태봉국의 기장이 되었으며, 궁예을 제거하고 왕건을 왕으로 옹립하여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었다.

O1b2a1a1-CTS713

 

전주 이씨(全州 李氏)는 전주(全州)에 토착해 온 집안이다. 시조 이한(李翰)은 신라 문성왕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 22세손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개국하였다.

 

전주 이씨(全州 李氏) 양녕대군파(讓寧大君派) 조선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1남으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전주(全州), 성은 이(李), 휘는 제(禔), 자 후백(厚伯), 시호는 강정(剛靖)이다. 조선 세종효령대군성녕대군의 친형이다.

O1b2a1a2-F2868, K4

 
(徐)씨는 한국의 성씨이다. 서(徐)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751,704명으로 조사되어, 대한민국 성씨 인구 순위 13위이다. 영,정조 140년 동안 정리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따르면 단군조선 예국군장(濊國君長) 여수기(余守己)가 서(徐) 성을 하사받은 것이 기원이다. 부여 서씨(扶餘 徐氏)의 시조는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扶隆)이다. 그는 660년(의자왕 20)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패하면서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에 압송되었는데, 당 고종이 본래의 성씨인 ‘부여(扶餘)’를 ‘서(徐)’씨로 바꾸고 웅진도독으로 삼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내고 태원군(太源君)에 봉해진 서존(徐存)을 1세조로 받들고 부여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달성서씨(達城徐氏)의 시조 서진(徐晉)은 고려시대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오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면서 달성에 세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진(徐晋)의 출생년도는 대략 서기 1260년에서 1280년 사이로 추정된다. 부인은 초계 주씨이다. 조선 후기 간행된 《만성보(萬姓譜)》에 의하면 달성 서씨의 시조 서진은 대구 서씨의 시조 서한의 증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달성서씨 유허비는 대구 달성공원(達城公園)에 있다.
O1b2a1a2a-L682 청주한씨=O1b2a1a2a1b-A12448
 
전주 (全州 金氏)시조 김봉모(金鳳毛)는 세계(世系)가 신라(新羅) 왕실에서 나왔다. 경순왕(敬順王)의 후예.《씨 분관록》에는 시조가 시랑(侍郞) 김봉모(鳳毛)라 하는데, 이후 문헌인 《증보문헌비고》에는 시조가 규정(糾正) 예(芮)라 한다.
O1b2a1a2a1a-CTS7620
 
나주 임씨(羅州 林氏)는 전라남도 나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의 대장군 임비(林庇)이다. 임비의 9세손 임탁이 해남 현무를 지내다가 이성계 조선을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회진으로 돌아가 살면서 본관을 회진(會津)으로 하였으나, 회진현이 나주에 속해짐에 따라 본관을 나주로 바꾸었다. 2015년 인구는 나주 임씨 277,713명, 금성 임씨 6,305명, 회진 임씨 5,540명이다.
O1b2a1a2a1a - L682 CTS7620
 
손 (孫)씨 본관은 경주, 밀양, 일직, 평해, 나주, 구례 등 35본이 있다. 대부분의 손(孫)씨는 사로(斯盧)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촌장 구례마(俱禮馬)를 원조로 하는 한반도 토착 성씨이다. 신라 유리왕 9년 촌장 구례마(俱禮馬)의 손자 (稷)이 (孫)씨가 되었다.
O1b2a1a2a1a-CTS7620

 

밀양 박씨(密陽 朴氏) 시조 박언침(朴彥忱)은 신라 경명왕의 첫째 아들 밀성대군(密城大君)이다.  박(朴)씨는 신라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2000년 인구 3,031,478명 대성이라, 상세한 족보 분파 분류 제시되지 않는 자료라 어떤 유전자가 밀양박씨인지 더 두고 봐야 합니다.

O1b2a1a2a1a-CTS7620, 

O1b2a1a2a1b1-PH40, 

O2a1b1a1a1a1e1-Y15976, O2a1b1a1a1a1e1a1a1-SK1686, N1b1a2b- F4208

 

전주 이씨(全州 李氏) 덕천군파(德泉君派) 시조 이후생(德泉君 李厚生)은 조선 제2대 국왕 정종과 성빈 지씨사이의 열째 왕자로, 1444년(세종 26년) 명선대부 덕원정(德原正)에 봉해졌으며, 이후 덕천정(德川正), 또1460년(세조 6년) 덕천군(德泉君)으로 봉군 되었다.

O1b2a1a2a1a-CTS7620,(

전주김씨, 옥천조씨, 평안손씨, 순흥안씨, 한양조씨, 김해허씨, 김녕김씨, 경주최씨, 진주하씨, 전주최씨)O1b2a1a2a1b1-PH40

 
O2-M122 유전자 전세계 분포도
O2-M122 유전자 전세계 분포도
중국을 중심을 아시아에 넓게 분포돼있다.

 

(太)씨는 발해 고왕 대조영(大祚榮)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본관은 협계(俠溪), 영순, 남원(永順) 등 14본이 있다. 인구의 대부분이 함경북도에 밀집되어 있다. 대(大)씨와 태(太)씨의 시조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大祚榮)의 아버지 대중상(大仲象)이다. 협계 태씨(俠溪 太氏)의 중시조 태집성(太集成)은 대중상(大仲象)의 후손인 태화균(太和鈞)의 8세손이다. 태집성(太集成)은 1228년(고려 고종 15) 대장군(大將軍)으로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가 되었고, 몽골군을 격파한 공으로 협계군(俠溪君)에 봉해졌다.
O2a1b1a1a1a1a1a1-F17
 

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시조는 권행(權幸)이다. 원래 이름은 김행(金幸)으로 신라의 종성(宗姓) 김씨다. 930년 왕건의 고려군이 견훤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고려 창업에 큰 공을 세웠다. 태조는 그의 전공을 치하하며 “정세를 밝게 판단하고 권도를 잘 취하였다(能炳幾達權)”라며 권(權)씨 성을 하사하고 태사(太師)의 작위를 제수하였다.

O2a1b1a1a1a1e1a1a1-SK1686, O1a1-L682, O1b2a1a2a-L682

 
연일 정씨(延日 鄭氏)의 시조인 정종은(鄭宗殷)은 진한(辰韓) 사로(斯盧) 취산 진지부(嘴山 珍支部) 촌장 지백호(智伯虎)의 원손(遠孫)으로 신라 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냈다. 정종은(鄭宗殷)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호장(迎日戶長)을 지내고 영일현백(迎日縣伯)에 봉해졌으므로 그 후손들이 본관을 영일(迎日)로 하였다 한다. 본관은 영일(迎日)의 옛 지명을 따라 연일(延日)로, 영일(迎日)에서도 본고장인 오천(烏川)마을 이름을 따서 오천(烏川)으로 쓰기도 했으나 근래에는 연일(延日)로 통일해 쓰고 있다. 연일 정씨는 소목(昭穆)을 밝히지 못하는 두 파가 있다. 하나는 고려 의종 때 중신으로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을 1세조로 하는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인 정몽주(鄭夢周)·정문예(鄭文裔)계와 고려 때 감무(監務)를 지낸 정극유(鄭克儒)를 1세조로 하는 감무공파(監務公派)인 정사도(鄭思道)·정철(鄭澈)계로 나뉘었다.

O2a1b1a1a1a1i-SK1691

 

광산 김씨(光山 金氏)는 광주광역시 및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김흥광신라 김알지 후예의 왕자로써 통일신라 말기 나라가 어지러워 장차 국난이 일어날 것을 알고 경주를 떠나 무진주 서일동(현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시조 김흥광에 대해 《김씨 분관록》에는 신라 49대 헌강왕의 아들로, 《증보문헌비고》 및 《조선씨족통보》에는 헌강왕의 셋째 아들로, 《광산김씨 정유대동보》, 《신라김씨선원보》, 《계림대보》, 《경주김씨보》 등에는 신라 45대 신무왕의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O2a2a1a1-CTS201 보성 오씨(寶城 吳氏)

 
양천 허씨(陽川 許氏)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양천구를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공암 허씨(孔巖 許氏)의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가락국 수로왕과 왕비 허황옥의 후손이라고 한다. 허선문(許宣文)은 공암촌(孔巖 : 현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에 살면서 농사(農事)에 힘써 많은 양곡(糧穀)을 비축(備蓄)하였는데,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군량이 부족하여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군량(軍糧)을 보급해 주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과의 싸움 중 말과 식량을 제공한 공으로 그를 공암촌주(孔岩村主)로 임명하여 공암촌을 식읍으로 내렸고, 허선문은 고려 건국에 대한 공으로 삼한공신이 되었다. 공암이 1310년(충선왕 2)에 양천현(陽川縣)으로 지명이 바뀜에 따라 양천 허씨(陽川 許氏)로 불리게 되었다.

허씨의 기원은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의 비(妃) 허황옥(許黃玉)에게 둔다. 허황후(許皇后)는 본래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서, 48년 16세 때 배에 석탑을 싣고 지금의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에 있는 부인당으로 들어와 정박을 했는데 수로왕의 영접을 받고 그의 아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허황후는 아들 10명을 낳았는데, 맏아들 등(登)은 김씨(金氏)로 정통을 잇게 하고, 두 아들은 황후의 뜻을 살려 허씨로 사성(賜姓)하였다. 김해 김씨는 부성(父姓), 허씨는 모성(母姓)을 각각 계승했다는 전설 때문에 두 성씨는 상혼(相婚)을 피한다.

O2a2b1a1a-M133, F8
 
부계 유전자를 보면 사실이 아닌 것 같죠? 김해 김씨는 C계열에서 나타납니다. (許, 기원전 1046년 ~ ?)나라는 중국 주나라의 제후국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요임금 때 지방 장관을 감찰하던 관직인 사악(四岳), 또는 태악(太岳)을 지냈던 허유(許由)를 지금의 하남성 등봉시 (登封市) 남쪽에 영수(潁水) 남안에 제후로 봉했다고 한다. 주나라 초기, 조정에서는 백이(伯夷)를 제후로 봉하였다고 한다. 허 (춘추) 기원전 712년 가을에 제(齊)나라 (강제)의 군주 제희공 강록(姜祿)은 정(鄭)나라, 노(魯)나라와 연합하여 허(許)나라를 정벌하였으며, 정나라에게 지배권을 넘겼다. 허나라는 기원전 576년, 정나라의 간접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남성 섭현(葉縣) 서남의 섭(葉)으로 옮겼다. 국성은 '강성 허씨'(姜姓許氏)이지만, 허나라가 멸망 이후에 후손들이 '강씨(姜氏)'와 허씨(許氏)'로 분적이 되었다. 전설 시대 허유를 비롯하여 알려진 연원은 2가지 이지만, 실제로는 지명을 가지고 성을 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국 허씨도 계통이 많다.
 
남양 홍씨(南陽 洪氏)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개국공신이며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를 지낸 홍은열(洪殷悅)을 중시조로 하는 남양 홍씨 당홍계(南陽 洪氏 唐洪系)와 고려 때 금오위 별장동정을 지낸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하는 남양 홍씨 토홍계(南陽 洪氏 土洪系)의 두 계통으로 나뉜다. 남양 홍씨 당홍계(南陽 洪氏 唐洪系)의 시조 홍천하(洪天河)는 고구려 27대 영유왕 때 중국 당나라에서 8학사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유학과 문화를 혁신시켰다.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유학의 발전에 공을 세워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고 태자태사(太子太師)가 되었으며 본관을 당성으로 하였다. 당성이 후에 남양으로 지명이 바뀌어 본관을 남양으로 하고 있는데, 현재는 경기도 화성군 일대이다. 고려 개국공신이며 삼중대광태사인 홍은열(洪殷悅)을 중시조로 1세 조상으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남양(南陽)은 본래 고구려의 당성현(唐城縣)이다.
O2a2b1a1a1a-Y17728
 

여산 송씨(礪山 宋氏)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충렬왕조에 찬성사중찬(贊成事中贊)에 오른 송송례(宋松禮)의 증조부 송유익(宋惟翊)을 시조로 한다.

O2a2b1a1a5a-CTS9678

 

림(林)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823,921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0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평택(平澤), 부안(扶安), 조양(兆陽), 울진(蔚珍), 은진(恩津), 장흥(長興), 전주(全州), 진천(鎭川) 보성(寶城) 등 90본이 있다. 인구는 나주 임씨가 289,558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평택 임씨 225,872명, 부안 임씨 76,154명, 예천 임씨 66,492명, 조양 임씨 42,844명 순이다.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은 원래 발음은 (林)이기 때문에 영문 표기는 "Lim"으로 표기한다. 최초의 인물은 상나라 비간(比干)의 아들 임견(林堅)이다. 비간(比干)의 부인은 비간이 죽은 이후 안양 인근으로 도피하는 가운데 장산(長山)에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천(泉)으로 지어주었고 주나라 무왕이 비간의 아들에게 임씨() 성姓과 견(堅)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전주 임씨(全州 林氏)는 전라북도 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1693년(숙종 19)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낸 임여순(林汝恂)이 중조(中祖)라 하였다.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는 임여순의 본관이 옥야(沃野 : 전라북도 익산)로 되어 있고, 2000년 인구조사 4,273명이다.

또 다른 전주 임씨로는 조양 임씨(兆陽林氏) 임세미(林世味)의 손자 임실을 파조(派祖)로 하는 전주 임씨가 있다. 《계해보(癸亥譜)》에 따르면 임실은 진사(進士)가 된 뒤 함경도 홍원군(洪原郡) 신익면(新翼面)에 입향하여 전주 임씨(全州林氏)의 파조(派祖)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계통은 전주백(全州伯) 임덕운(林德雲)을 중시조로 하는 임영봉(林迎奉)의 후손이다. 그가 평안도 구성(龜城)에 퇴거를 함으로써 파(派)를 이루어왔다고 《병자보(丙子譜)》 서문에 쓰여 있다.

O2a2b1a1a8a-Z44092+

 

오씨(吳氏)의 유래는 춘추전국시대 중국 양자강 부근의 주나라 제후국이었던 오(吳)나라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중국 양자강 부근의 주나라 일족으로 주나라의 고공단보(古公亶父) 주 태왕(周太王)의 장남인 오 태백(吳太伯)을 시조로 하여 희성(姬姓)에서 나왔다. 제후국 오(吳)나라는 주태왕의 장남 오태백을 초기 군주로 시작하여 하대 자손인 부차왕의 손자인 루양부터 주나라 천자로부터 오(吳)씨 성을 하사받아 오씨가 되었으며, 비로소 오(吳) 나라의 왕으로 되었다.
태백왕25세손인 초나라 재상 오기(吳起)의 45세손인 오첨(吳瞻) 500년(지증왕 1)에 중국에서 신라로 입국했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오첨(吳瞻)은 왕명으로 김종지(金宗之)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함양에서 2남 1녀를 두고 22년을 살다가 521년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는데 둘째 아들 오응(吳膺)은 나이가 어려 중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그대로 신라에 남아 함양에서 살게 되었다.

보성 오씨(寶城 吳氏)는 오현필(吳賢弼)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보성 오씨 시조 오현필(吳賢弼)은 오첨(吳瞻)의 24세손이며, 병부상서(兵部尙書) 오수권(吳守權)의 셋째 아들이다. 오현필(吳賢弼)은 1216년(고종 3)에 거란군을 격퇴한 공으로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졌다. 오현필의 묘소는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취리산에 있다.

O2a2b1a1b-M133, O2a2a1a1-CTS201 화순, 함양, 흥양, 장흥 같은 계통, 오씨(吳氏)O2a1b-JST002611

 
원주 이씨(舊 原州 李氏)원주 이씨의 선조는 중국 고대 한고조 BC 200년 경 진란(秦亂)을 피해 절서지역 현 절강성에서 고조선으로 와서 씨족 사회를 이루었다. 신라 16대 흘해왕조에 득사위한 진민(眞民)이 원시조(元始祖)이고 공의 27세손도균(道均)의 차남이춘계(椿桂)가 시조이다. 중시조인 8세 이희백(希伯)은 남부 부령을 지냈고, 9세 녹규(祿圭)는 정순대부 판위위시사로 원주를 중심으로 중흥 번영하였다. 녹규는 삼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임(琳)이 봉어동정으로 동정공파시조, 삼남 침(琛)이 병사공파시조, 차남 인(璘)이 중정대부종부시령을, 인의 자(子)가 재령현령 십일세 방진(邦珍)이고, 공은 형제를 두어 장남 완(玩)이 주부공파시조 차남 거(봉례랑공)가 육형제에 장남 기(起)가 은사공, 차남 추(趨)가 교도공, 삼남 월(越)이 사용공, 사남 부(赴)가 사직공, 오남 필(䟆)이 갈촌공, 육남 진(趂)이 평천공, 육파의 파시조이며 총 일원(一源) 구파(九派)를 이룬다.

신 원주이씨(新 原州李氏)는 본래 익흥이씨(益興李氏)였다. 원주의 지명 변천 과정에서 원주는 고려 때 잠시 익흥이었다. 그러나 원주라는 지명으로 굳어버리자 익흥이씨를 원주이씨로 개칭했다. 명칭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익흥이씨 또는 신원주이씨라 한다. 이는 피차간에 분별을 위한 것이지 조금도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O2a2b1a2a1a2-F273

 

(崔)씨는 한국의 성씨이다. 최(崔)씨의 본관은 문헌에 387본까지 기록되어 있지만, 이 중 시조와 계대가 확인되는 본관은 경주(慶州)·전주(全州)·해주(海州)·강릉(江陵)·탐진(耽津:강진)·수성(隋城)·삭녕(朔寧)·화순(和順)·강화(江華)·낭주(朗州)·동주(東州:철원)·우봉(牛峰)·흥해(興海)·수원(水原)·통천(通川)·영흥(永興)·상원(祥原)·완산(完山) 등 43본이다. 최(崔)씨의 기원은 신라 계통과 고구려 계통 등 다양한 계통이 존재한다.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는 최(崔)씨는 1세기 평양 대동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었던 ‘최씨 낙랑’이 거론된다. 고구려 기록에 낙랑 최리(崔理)가 옥저에서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好童)을 사위로 삼았다고 한다. 신라 계통의 최씨의 기원은 신라 6부족의 하나인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의 촌장이었던 소벌도리(伐都利) 소蘇씨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계통으로 고구려 계통의 최(崔)씨가 있다. 최치원의 금석문으로 알려진 쌍계사 진감선사비에 ‘진감선사’의 속명이 최씨임을 밝히며, 고향은 금마(金馬, 현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로 적고 있다. 진감선사의 선조에 대해선 수나라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포로가 되어 고구려에 눌러 살다가 고구려가 멸망한 뒤 금마로 내려와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주 최씨(慶州 崔氏) 시조 최치원(崔致遠, 857년 ~ ?)은 돌산고허촌의 촌장인 소벌도리(蘇伐都利)의 24세손으로, 신라 후기의 6두품 출신 학자다.

수원 최씨 O2a2b1a2a1a2-F242, 당진 최씨 O2a2b1a2b2a-F728, O2a2b1a2a1a3b2b1-F4249, 전주 최씨 

O1b2a1a2a1a-CTS7620
신라 사로 6촌 촌장에서 파생된 성씨姓氏
사로 6촌 촌장에서 파생된 성씨
알평謁平=이李 소벌도리蘇伐都利=소蘇,최崔 지백호智伯虎=정鄭 구례마俱禮馬=손孫 지타祗陀=배裵 호진虎珍=薛

 

최崔씨 한국과 중국 유전자 검사 비교해보고 싶다. 같은 글자를 써도 본관이 다르면 다른 혈통 가족, 지백호는 성姓이 지智로 생각된다. 뒤에 글자가 백伯맏, 적장자 족장이란 뜻, 호虎가 이름이거나, 1부 다처제 가족에서 배다른 자녀들을 뜻하기도 한다. 소蘇 성姓은 중국에도 있는 오래된 성씨다.

 

崔씨는 주나라 강태공 강상姜尙, 강姜 여呂씨에서 파생된 다.

여씨(呂氏)는 강성(姜姓)에서 나왔다. 5300년전 중국 고대 삼황오제이자 고대 중국의 제왕이었던 염제신농씨는 강수에서 자라 지명인 강(姜)을 성으로 삼아 강씨가 되었으며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강씨로 이어졌다. 염제신농씨의 16세 손인 강백이(姜伯夷)는 여국(呂國)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그의 후손들이 여씨(呂氏)를 성으로 삼았다. 강백이의 37대 후손인 여상 (呂尙, 강태공, 강성여씨/姜姓呂氏, 강태공은 후에 원래 성씨인 강성으로 되돌아옴.)이 춘추시대 제나라(현재 중국의 산동지방)의 왕이 되어 그의 후손들(강급(여급),강소백(여소백)등)이 제나라를 800여년간 통치한다. 강태공의 후손인 조나라의 상인 여불위는 진 장양왕을 진나라의 황제에 앉히고, 여불위의 아들을 임신하고 있던 애첩 조희(趙姬)를 진 장양왕에게 주었으며,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중국을 최초 통일한 진나라의 황제인 진시황(여정,呂政)이다. 여불위의 후대이자 한나라의 황제 유방(劉邦)의 황후였던 고황후 여치(呂雉)는 황태후가 되어 한나라의 실권을 거머쥐었다. 강백이의 후손들은 현재 중국의 남양여씨를 이루게 되었다. 현재 강성(姜姓)계 여씨는 중국,동남아 등지에 약 800여만명이 살고 있다. 강씨(姜氏)와는 한 핏줄이다. 강씨(姜氏)에서 여씨 외에도 수많은 성씨가 갈라졌는데, 중국의 천수강씨(天水姜氏), 한국의 진주강씨(晋州姜氏), 중국 한족(漢族) 고씨(高), 범양노씨(盧), 여씨(呂), 오(吳), 중국 한족(漢族) 허씨(許), 평해구씨(丘,邱), 강(强), 온양 방씨(方), 중국 제양당 정씨(丁), 주(朱), 장(章), 사(謝), 제(齊), 습(習), 악(岳), 시(柴), 하(賀), 경(景), 신(申), 향(向), 가(柯), 뢰(賴), 박(薄), 상(尙), 중국 돈황 홍씨(洪)(남양홍씨 당홍계), 초(焦), 기(紀), 최(崔), 좌(左), 역(易) 등 통합 247여개의 수많은 성씨들이 강씨에서 갈라졌다. 특히, 강태공 사당에는 해마다 여씨를 비롯하여 강태공의 후손들과 강씨에서 분파된 성씨들이 대거 참례를 온다.

 

전주 이씨(全州 李氏) 해안군파(海安君派) 이희(李㟓) 조선의 제11대  중종과 후궁 숙의 홍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인종, 명종, 덕흥대원군(선조의 생부) 등의 이복형이다. 생모 숙의 홍씨는 남양 홍씨 출신으로, 중종에게 가장 많은 총애를 입은 후궁이라고 한다. 8살 때인 1518년(중종 13년) 음력 12월 28일 정식으로 해안군(海安君)에 책봉되었다.

O2a2b1a2b1a2-CTS682,CTS2272

 

수원최씨(水原崔氏)수원 최씨는 동성동본이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두계통이 있다. 한 계통은 고려시대 산원동정(散員同正)을 지낸 최정(崔靖)을 시조로 하며 그의 선대에 대해서는 문헌이 없어 알 수 없다. 또 다른 계통은 고려 제15대 예종 때 수주(水州ㆍ수원의 옛 이름)의 호장(戶長) 최상저(崔尙翥)를 시조로 한다. 수원(水原)의 옛 이름이 수성(隋城)이라 수원 최씨(水原 崔氏)와 수성 최씨(隋城 崔氏)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수원 최씨(水原 崔氏)는 원최(原崔)라 하고 수성 최씨(隋城 崔氏)는 내최(來崔)라고 부른다.

O2a2b1a2a1a2* - F444+,F273+,F1866+,MF795+

 

전주 이씨(全州 李氏)는 전주(全州)에 토착해 온 집안이다. 시조 이한(李翰)은 신라 문성왕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 22세손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개국하였다.

O2a2b2a2a2-SK1783
 

전주 이씨(全州 李氏) 목조대왕파 목조(穆祖, ? ~ 1274년)는 고려 문신으로, 조선시대 추존왕이자 익조(翼祖)의 아버지이며, 태조 이성계 고조부이다. 이름은 이안사(李安社)이다. 1392년 7월 28일 태조 이성계에 의해 목왕(穆王)에 추봉되었다가 1411년 4월 22일 태종에 의해 목조(穆祖) 인문성목대왕(仁文聖穆大王)에 재 추봉되었다.

O2a2b1a2a1a3-CTS3776

 

조나라(趙, 기원전 403년 ~ 기원전 228년)는 진(晉)나라에서 분리되어 나온 나라로서 전국시대 전국칠웅 중 하나이다. 위나라, 한나라와 더불어 삼진(三晉)이라고 일컬어진다. 북쪽엔 연나라와 붙어있고 남쪽에는 황하가 흐르고 있다. 주 목왕(周穆王)의 신하인 조보(造父)가 조성(趙城)으로 봉해졌다. 그 후에 조씨(趙氏)를 칭하였고 조씨 가문의 역사가 시작된다. 조보(造父)는 산서성(山西省) 출신으로, 그 곳에서 유년기를 보내다가 주나라에 귀부하였다. 일부에서는 조보을 서융과 관련된 인물로 파악하기도 한다. 조보(造父)는 주목왕의 적기(赤驥), 도려(盜驪), 화류(驊騮), 록이(騄耳), 백희(白犧), 거황(渠黃), 유륜(踰輪), 산자(山子)라는 말과 수레도 잘 몰아 주목왕(周穆王)의 총애를 받았다. 주목왕이 조보와 함께 지방에 출사하였을 때 서(徐)나라가 난을 일으켰자, 조보(造父)가 수레를 신속하게 몰아 주목왕이 빠르게 수도로 돌아와 서나라의 난을 진압할 수 있게 하였다. 이 공으로 진(晉)나라에 속하였던 조(趙) 땅에 봉해져 후손들이 조씨가 되었다고 한다.그 후 조씨 일족은 진나라(晉)의 신하가 되었다. 진 문공(晉文公)의 측근인 조성자 조최(趙成子 趙衰)가 높은 관직에 올랐고 조씨 가문은 크게 번성하였다. 춘추시대 말기에는 진나라를 실질로 다스리는 육경(六卿)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재상 조선자 조순(趙宣子 趙盾) 사후에는, 조씨 가문은 여러 가문에 견제되고 숙청되고 조 선자의 손자 조 문자 조무(趙文子 趙武)가 등장할 때 까지 몰락한다. 기원전 456년 육경 중에 세력이 강했던 지씨 일족의 수장인 지양자 지요(智襄子 智瑶)가 한씨, 위씨 일족을 거느리고 조씨 가문을 멸족하게 하려고 하였다. 조씨 가문의 수장인 조 양자 조무휼(趙襄子 趙無恤)은 한호(韓虎), 위구(魏駒)에게 말하기를 "지씨는 탐욕스러워, 우리 조씨가 멸족 된 뒤에는 당신들 차례다"라고 말하면서 설득에 성공한다. 세 가문에 역공당하여 지씨 가문은 멸망하고 진나라의 영토를 조씨, 한씨, 위씨의 세 가문이 나누었고 각각 독립하였다. 그 후에 기원전 403년에 조나라, 한나라, 위나라는 정식으로 제후국이 되었다.
 
송 태조(宋太祖, 927년 3월 21일 ~ 976년 11월 14일)는 중국 5대 10국 시대의 장군이자 후주의 장군이며 중국의 송 황조의 창시자이자 북송의 초대 황제(재위: 960년 ~ 976년)이다.  (趙)이고,  광윤(匡胤)이다.
 
풍양 조씨(豐壤 氏)는 경기도 남양주시를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 조맹(趙孟)이다. 풍양(豐壤)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일대의 옛 지명이다. 시조 조맹(趙孟)의 원래 이름은 바우(岩)이다. 그는 풍양현(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천마산 기슭 바위동굴에 은둔해 살았다. 당시 신라를 정벌하던 왕건은 영해(현 경상북도 영덕)지방 전투에서 신라군에 참패를 당하여 휘하의 장군들을 모아놓고 중지를 모았을 때 한결같은 대답은 풍양현에 숨어 사는 바우 도인의 지략을 빌리자는 것이었다. 이에 왕건이 그를 찾으니 당시 나이가 70여 세였다. 이 때부터 신라 정벌의 길에 올라 뛰어난 지략과 용맹으로 삼국통일을 이루자 태조 왕건이 으로 이름을 내렸다.

Q1a1a1a1-F4531*

 

출처 분자인류학논단 - 성씨별 유전자 검사 결과 보려면 가입 퀴즈 풀고 로그인 필요

블로그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