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대한민국 영토인 근거 - 신용하 교수 인문학 특강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 침범, 한국 공군 퇴치 대응에, 일본이 왜 한국이 일본 영공에서 군사 행동하느냐고 독도 영유권 주장 망언 했다.
1. 우리나라 역사에 드러난 증거
국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국민과 영토와 주권을 삼대 요소로 해서 형성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동일합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영토 주권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1952년부터 사실은 그 전인 51년부터 그리고 본격적으로는 52년부터 강력하게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논쟁을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60년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독도 영유권 논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독도의 영유권을 비롯해서 모든 영토 논쟁이 시작이 되면 학자들은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을 합니다. 첫째는 그 땅이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 누구의 땅인가. 둘째는 현재 국제법상으로 그 땅이 어느 나라의 영유로 공인되어 있는가. 셋째는 지리적으로 그 땅이 어느 나라에 더 가까운 것이, 땅인가. 지리적으로 어느 나라에 속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가. 이 세 가지 측면입니다. 오늘 이 세 가지 접근 방법에 따라서 먼저 독도는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의 땅인가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독도의 역사적 권원(권리의 근거),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독도에 대한 국제법적 영유권도 역사적 연유를 권원으로 해서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그 땅이 어느 나라 땅인가, 이것을 연구하는 것은 영토 분쟁에서는 매우 지극히 중요합니다.
한국의 독도 영유권의 역사적 권원은 서기 512년부터 독도를 한국 고유 영토로 영유한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 지증왕 13년, 서기로 512년에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하여 병합되어서 신라의 지방 관제의 하나로 편제 될 때부터 독도는 한국의 고유 영토로 지금은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로 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일본쪽에서는 독도, 우산국이 울릉도만으로 구성되어있지 울릉도와 함께 독도를 포함해서 두 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증거 자료를 요구합니다.
우선 우리쪽 관찬(관청 출판)자료를 보면은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 숙종실록, 만기요람 군정편, 지금 뭐 문헌 비교, 비고, 그 밖에 각종 고문헌들과 고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 처음 이름, 울릉도와 우산도가 모두 옛 우산국 영토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만기요람 군정편에서는 우산도를 당시 일본 호칭도 기록해서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 땅이며, 모두 우산국 땅이며,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독도 마츠시마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19세기에 울릉도를 다케시마로 부르고 독도, 우산도를 송도, 마츠시마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바꿔부르고 있었어요. 만기요람은 조선의 우산도가, 독도가 일본에서는 송도라고 호칭된데 이 두 개가 모두 개 우산국 영토라고 명백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산국은 울릉도+우산도, 독도로 구성되어있다 라고 하는 것을 문헌상으로, 관찬문헌상으로 명료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일본 외무성은 궁여지책으로 ‘우산도’가 오늘날의 ‘독도’라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그렇고요.
일본 외무성의 주장을 반증하는 지도를 하나만 예를 들면은 예컨대, 한국의 초기 카톨릭 신부 김대건 신부가 1846년에 교황청에 보고용으로서 프랑스어로 표기한 조선전도, 이건 거기서 가져온 것인데 Carte de la Corée라고 하는 울릉도 동남쪽, 동쪽에 비교적 정확한 위치에 독도를 그려넣고 우산(Ousan)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우산도가 독도임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나온 지도, 그 밖에 모든 지도에 독도 옆에 우산이라고 표기된 것은 다 독도를 말합니다. 다른 섬은 지도에 올라갈 수가 없게 되어있기 때문에 섬이 세 개밖에 없으니까 아주 명료해집니다.
조선 왕조 세종의 통치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아주 중요한 기록이 있는데 “독도와 즉 우산도와 울릉도의 두 개 섬이 강원도 울진현의 바로 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거리가 멀지 않아서 날씨가 청명하면 서로 보이며 신라 때에는 우산국이라고 칭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산에 대하여 계속 기록이 나옵니다. 세종은 뿐만 아니라 독도·울릉 안무사, 독도 울릉도 조사 단장이라고 하는 직책의 관리로 김인우를 두 번이나 파견하면서 통치권을 행사했습니다. 이것은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고유 영토라고 하는 명백한 사실의 증거 기록입니다.
한국은 15세기 16세기에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당시 한자 문화권 세계에 알렸습니다. 일본을 포함한 모든 한자권 세계가 물론 항의 없이 승복했습니다. 이걸 알린 자료가 바로 1481년에 조선 왕조에서 정부가 편찬한 동국여지승람과 그 50년에 후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입니다.
이 두 저서에서는, 편찬서에서는 독도와 울릉도는 조선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동해 가운데 2개 섬이라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으로 조선 왕조 정부는 독도가 조선 영토이며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섬임을 당시의 한자 문화권 세계, 북방으로는 중국, 몽골, 여진, 남방으로는 일본, 유구, 베트남에 전부 책을 직접 보내서 세계에 널리 알렸습니다. 물론 이때 일본은 독도가 조선 영토가 아니라고 반박한 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2. 일본 역사에 드러난 증거
일본이 역사적으로 독도를 영유했다는 근거가 있을까요?
일본 외무성은 1960년 한국 정부에 보낸 외교 문서에서, 1667년에 편찬된 은주시청합기라고 하는 책에서 울릉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 독도를 송도(松島, 마츠시마)라고 칭하면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인지했다고 주장하는 외교 문서를 한국 외교부에 보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외교부는 답을 못했는데 그 후 은주시청합기를 열어보니 이 고문헌의 내용은 독도와 울릉도에서 고려를 보는 것이 마치 일본의 운주(雲州) (시마네현이 포함되어있는 옛 지명), 시마네현에서 은기(隱岐)도를 바라보는 것과 같아서 이 두 섬 송도와 죽도, 독도와 울릉도는 고려에 속한 섬이고, 일본의 서북쪽 국경은 은기도, 은주, 차주를 한계로 한다고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즉 일본이 독도의 일본 영유를 증명하는 자료라고 우리 외교부에 보내온 이 자료에 내용은 반대로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고려의 영토, 한국의 영토이고 일본의 영토는 이 은주, 차주를 한 개로 한다고 쓰여있었습니다. 은주시청합기는 이제는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증명하는 자료가 되어버렸고, 일본의 영유권을 증명하는 자료는 이제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의 최고 권위 있는 1785년 고지도도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일본 교과서에도 나오는 유명한 실학자가 1785년에 편찬한 삼국통람도설의 부속 지도가 다섯 장이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삼국접양지도는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국을 더욱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그 옆에 다시 조센노모찌야(朝鮮ノ持也), 조선의 소유임, 라고 글자까지 하야시 시헤이 친필로 써넣었습니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더욱 명백히 한 것입니다.
삼국접양지도는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국을 더욱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그 옆에 다시 조센노모찌야(朝鮮ノ持也), 조선의 소유임, 라고 글자까지 하야시 시헤이 친필로 써넣었습니다.
클라포르트는 독일인인데, 하야시 시이에의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전 세계에 보급을 했습니다. 이 지도도 정확하게 번역을 했는데 그 클라포르트 번역지도를 보면 "Takenoshima ála corée" "Takenoshima to the Korea." 한국 것이다라고 아주 명료하게 해놨습니다.
왜 이것을 뽑아서 이야기하냐하면 클라포르트의 번역서는 전 세계 주요대학 도서관에 주요도서로 다 비치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서양사람들이 열어보기만 하면 아, 원래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사람들도, 일본의 학자들도 한국의 것임을 명료하게 알고 이렇게 명료한 지도를 그려서 세계에 보급했구나 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200여종의 독도를 다룬 고문헌과 지도가 양국 학자, 그리고 서양 일부 학자들에 의하여 발굴됐는데 독도 영유권과 관련된 표시로써 독도가 일본 영유라고 밝혀주거나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은 한 점도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역사적으로 독도는 어느 나라 영토일까요? 바로 한국의 영토입니다. 200% 한국의 영토입니다.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1696년 1월에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영토이므로 일본 어부들의 고기잡이하러 건너가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고, 위반자는 처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요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본이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했을 때, 일본군은 독도를 거쳐 울릉도에 들어와서 주민을 학살하고 노략질했습니다. 조선 왕조 정부는 주민 피살을 막기 위해 울릉도를 비워두는 쇄환공도(刷還空島) 정책을 더욱 강화해서 강행했습니다.
이틈에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일본 어부 오타니(大谷甚吉)가와 무라카와(村川市兵衛)가, 두 가문의 청원을 받고 조선 정부 몰래 두 가문에 1618년 울릉도에 건너가는 허가장인 죽도도해면허(竹島渡海免許), 그리고 1656년 독도에 건너가는 송도도해면허(松島渡海免許)를 발급해주었는데 이 도해면허는 도쿠가와 막부가 쇄국전책 속에서 당시 다른 나라, 외국에 넘어갈 때 발급해주는 외국에의 도항 면허 허가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도해 면허의 그 대상 지역은 외국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본 외무성은 죽도 도해 면허와 송도 도해 면허를 갖고 송도, 즉 독도가 역사적으로 일본 고유 영토의 증거라고, 이것이 지금 남아있는 문헌상의 유일한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작년에 대대적으로 일본 신문을 동원해서 설명까지 했어요. 그러나 그 진실은, 그 사실은 정반대가 진실입니다.
왜냐하면 도해 면허는 바다를 건너 외국에 갈 때만 발급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대마도에 갈 때는 이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울릉도나 독도나 유구나 당시의 유구나 조선에 갈 때는 반드시 도해 면허를 받아야 되기 때문에 거기 적혀있는 지역은 다 외국인 것입니다.
1693년 봄에 안용복(安龍福)이라고 하는 동네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울릉도에 들어갔다가 막부, 일본 막부 장군의 도해 면허를 갖고 들어온 오타니 가문 측의 일본 어부들과 논쟁을 벌이게 됐습니다. 일본 어부들은 협상을 제의하여 안용복이 일본 어선에 올라갔더니, 그들은 안용복을 일본으로 납치해갔습니다.
안용복은 배키 주 태수 앞에서도 그랬고, 지금 동경에 끌려가서 일본의 막부 장군과 관백 앞에서도 당당하게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영토임을 설명하고 그 증거로 당신의 나라에도 보내온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돼 있을터이니 찾아보라고 주장을 하고 설명을 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팔도전도에 울등도 독도가 표시돼있다.
이러고 보니까 울릉도와 독도가 명료하게 조선 영토임이 확실함으로 막부 장군과 관백은 이를 인정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울릉도·독도의 영유권 논쟁이 일시 한 때 벌어졌었는데, 일본 도쿠가와 막부의 장군과 관백은 3년 후, 1696년 1월 28일 회의에서 마침내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영토임을 확인하여 일본 어부들의 조선 울릉도 독도에의 고기잡이 출하하는 것과 나감과 도해(渡海)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리고, 일본 어부들의 조선 울릉도·독도에의 출어, 도항을 엄금했습니다.
3. 일본 역사에 드러난 증거
도쿠가와 막부 정권은 그들의 집권이 끝나는 1868년, 19세기 메이지 유신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울릉도·독도의 조선 영유권을 존중했습니다. 하지 우에몽이라고 하는 사람이 1832년 도해 면허를 받지 않고 독도 옆을 지나서, 사실 독도도 잠깐 들렸었는데 독도 옆을 지나서 울릉도에 건너갔다 온 것이 4년 후인 1836년에 발각되자 그를 심문한 다음에 참형으로 처형을 하고, 1836년 나무로 만든 경고판을 세워서 조선, 울릉도, 도해 등, 다른 나라로 도해 면허 없이 도해함을 엄금했습니다.
이게 시마네현 하마다 항구에 게시되어있던 경고판이 남아있는데요, 현재에는 두 개가 남아있는 걸로 발견이 되어 있습니다만 앞으로 더 발견이 될 겁니다. 아주 엄격하게 울릉도 독도 도해에 넘어가면 처형한다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때 처형당한 하지 우에몽의 심문기록인 '조선죽도도항시말기'에 막부정권이 만든 '죽도방각도'라고 하는 지도가 부록되어 있는데, 조선 영토는 적색, 일본 영토는 청색으로 채색을 했습니다.
막부정권이 만든 '죽도방각도'라고 하는 지도가 부록되어 있는데, 조선 영토는 적색, 일본 영토는 청색으로 채색을 했습니다.
이 죽도 방각도에서도 독도와 울릉도는 조선 색깔인 적색으로 채색을 해서 독도와 울릉도는 조선 영토임을 표시하고 있어요. 이것은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 영토이며 또한 도쿠가와 막부의 소위 ‘송도(독도)도해면허’도 ‘죽도(울릉도)도해면허’와 함께 동시에 취소 폐지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동경대학에 있는 '죽도 방각도'는 조선의 본토 색깔인 빨간색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그리고, 초록색으로 일본 본토를 그린 다음에 오키도는 초록색으로 그려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것이고 은기도는 자신의 것이라는 걸 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구정부, 막부정권과의 관계에서 명료하게 된 독도와 울릉도는 조선 영토이라고 하는 명료한 증거이고 만일에 동양의 국제법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이때 이미 국제법상으로도 동양 국제법상으로 독도와 울릉도는 한국 것으로 다 동양 모든 관계국 사이에 공인 됐다고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동양에서는 역사와 국제법이 구분되지 않아서 역사적으로만 이제 확인이 되는 겁니다.
4. 일본의 독도침탈 야욕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 제 41호로 독도를 한국 영토로 서양 국제법을 참조하여 세계에 다시 공표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지금 우리가 적용 받고 있는 또는 우리가 다루는 국제법은 서양에서 만든 국제법이에요. 그래서 현재 국제법상으로 독도는 어느 나라 영토로 공인되어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그때의 국제법은 서양 국제법을 말하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서양 국제법에 의하여 독도가 어느 나라 영토로 공인되었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울릉도는 개항장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특히 청일전쟁 후에, 1895년 후에 불법 입도해서 거주하기 시작하고 일본인들이 들어오니까 울릉도는 개항장이 아닌데 일본 국가가 경찰관, 파출소까지 만들어 놓고 아주 울릉도를 실질적으로 일본 영토로 만들려고 하는 영토 야욕이 보였어요. 일본 정부가 이를 방조하기 때문에 대한제국은 1900년 6월 내부 조사관 우용정(禹用鼎)과 부산 해관 세무사 영국인, 프랑스계 영국인 라포트(E. Laporte), 일본인 관리 주 부산 일본 영사관 부영사 아카츠카(赤塚正助) 등으로 구성된 '국제조사단'을 편성해서 울릉도 현장에 파견해서 현지 실태를 조사하게 한 다음에 조사단의 보고를 받고 대책을 세웠습니다.
대책이 대한제국은 1900년 10월 25일 칙령 제 41호로서 지방 관제를 개정하여, 종래에 강원도 울진현에 속했던 울릉도와 독도를 이번에는 독립군으로 승격시켜서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를 '울도군'으로, 격상시키고, 울도군읍의 관할지역을 울릉도와 그 옆에 있는 죽서도, 죽도와 그리고 독도를 석도라는 이름으로 법률적으로 규정을 했습니다.
이 때 독도를 종래의 명칭 ‘우산도’로 호칭하지 않고 석도(石島) 독도로 표기한 것은 쇄환공도정책이 1882년에 폐지되어 1883년부터 합법적으로 들어온 울릉도 도민들이 사투리로 돌을, Rock, Stone을 '독'이라고 발음해서 '독도'를 '돌섬'이라는 뜻의 지방 사투리로 "독섬, 독섬"하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때 국제법에 밝았던 프랑스계 영국인 라포트(E. Laporte)는 독도의 서양호칭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 리앙꾸르 석도라고 알고 있었으며, 이것도 '리앙쿠르 석도'가 되므로, 리앙쿠르 석도도 포함해서 겸하여 석도로 표기한 것입니다. 서양 국제법에 맞추어서 서양 사람들의 자문을 받아가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예 리앙쿠르 락스도 바로 이게 우산도고 독섬이고 독도임을 알리기 위하여 석도로 표기를 해버린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 해군성 수로국이 1882년 발행한 일·지·한 항로이정일람도(日支韓航路里程一覽圖)라고 하는 당시 해운에서 널리 쓰인 지도에서는 “우산도”를 “리앙꼬르드 석”이라고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리앙꼬르드 석이 바로 우산도이고 이게 대한제국 영토이고 울도군에 속한다고 하는 것을 명료하게 서양 국제법상으로 규정해서 세계에 재 공포 한 겁니다.
대한제국 1900년 칙령 제 41호의 포고와 중앙 정부 관보 고시에 의해 ‘서양국제법’상으로도 독도가 대한제국 영토임을 재 확인 공포한 것입니다. 이때 전 세계가 이의 제출하거나 제기한 일이 없습니다. 일본은 1905년 한국 정부 모르게 비밀리에 독도를 무주지(無主地)라고 전제를 하고 일본 영토에 편입하는 내각 결의를 했으나, 독도는 일본 정부도 이전에 한국 영토로 거듭거듭 확인하고 재확인한 유주지(有主地)이므로 사실은 법률상으로 완전히 무효가 됩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독도에 일본 해군의 러시아 해군 함정을 감시하는 망루를 설치하려고 계획하고 있던 중에, 일본 시마네현 어업가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라는 사람이 독도 소유자 한국 정부에 독도 사용권 대부 청원서를 제출하려고 일본 정부를 찾아가자, 일본 정부에 대행을 요청하러 가자 일본 정부는 이를 영토 편입 청원서로 바꾸어 일본 정부에 신청하면 대부금을 받지 않고 너에게 장기 대부를 하겠다고 꼬여서 이를 영토편입청원서로 바꾸게 하고 이 청원서를 승인하는 형식을 취하여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 회의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여 새로 다케시마(竹島)라는 명칭을 붙인다고하는 내각회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때 일본 정부는 독도에 대해 어떤 구실을 붙였냐하면 “다른 나라가 이 섬을 점유했다고 인정할 형적이 없다”고 해서 독도가 임자 없는 “무주지(無主地)”라고 주장하여 전제한 것입니다. 당시 구한말 시대 서양 국제법은 무주지를, 영토를 편입하는 두 개 조건으로 첫째는 그 영토가, 그 섬이 반드시 주인 없는 무주지여야 하고 둘째는 무주지인 경우에도 이웃 여러 나라에 이의가 있는가 없는가를 반드시 조회해서 그 답을 듣도록 했어요.
그래서 이의가 없을 때만 영토 편입을 가능하게 했어요. 그런데 이 두 개 조건 중에서 독도가 1905년 1월 이전에 무주지입니까, 주인이 있는 유주지 입니까? 한국이라는 주인이 있는 유주지입니다. 그것이 증명이 되면 “무주지 선점론”이라고 하는 당시 국제법에 입각한 일본 정부의 독도 영토 편입 내각회의 결정은 국제법상 완전히 , 당시 국제법상으로도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각 결정의 원문인데 여기 빨간 줄을 친 것이 무인도일 뿐만 아니라 타국이 이를 점유한 적이 있다고 하는 형적이 없다. 무주지이다, 라고 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거예요. 독도는 서기 512년부터 한국의 고유 영토로 확정된 이래 계속하여 한국 영토의, 영토로서 존속해왔으므로 역사적인 진실은 “한국이라는 주인이 있는 섬”, 유주지 인 것입니다.
일본 정부도, 예컨대, 이 지금 강의한 책자에서 제시한, 이 원고에서 제시한 증거 자료만으로도 1696년 1월 도쿠가와 막부의 공문서, 천 육백, 1869년 명치 정부 때의 일본 태정관과 외무성의 공문서, 1869부터 1870년의 일본 태정관과 내무성의 공문서, 1877년, 내무성 일본 태정관의 공문서 등에서 잘 증명되는 바와 같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일본 메이지 정부 자신이 잘 알고 있었어요.
따라서 실제로 일제 1905년 내각 결정에 앞서서 일본 내무성은, 회의 초기에는 독도가 한국의 영토 “우산도”라고 영토 편입을 반대하는 의견을 진술했었어요. 그런데 일본 해군성을 비롯한 또 일본 외무성이 주동이 돼서 합의, 만장일치로 합의하는 것으로 해서 통과를 시켰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 몰래 독도를 비밀리에 침탈하는 내각회의 결정을 했으나, 한국정부와 세계가 알게 될 것이 두려워서 이를 관례대로 중앙 정부의 관보에 고시하지도 못하고 따라서 당시 국제법의 영토편입 조건을 이 두 번째 조건 마저도 다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동경에 주일본 한국공사관이 활동하고 있어서, 중앙 관보에 고시하면 이를 알게 되는 한국공사관이 즉각 항의하여 비밀이 전 세계에 탄로되고 독도 영토편입이 무효화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정부는 약 1개월 고심하다가 이를 시마네현 현보에 1905년 2월 22일자로 고시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다케시마의 날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시마네현 현보는 시마네현 지방공무원의 내부 자료이기 때문에 내부 뉴스레터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이를 도저히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1905년 연말까지도 일본 정부의 독도침탈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독도침탈결정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06년 3월 28일, 울도군수 심흥택에게 일본 오키도 현지사가 찾아와서, 들려가지고 이제 우산도가, 죽도가, 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일본 영토로 편입됐다고 하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게 된 심흥택은 즉각 ‘본군 소속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되었다고 일본인들이 주장한다’고 강원도 관찰사에게 항의 보고를 하고, 강원도 관찰사는 중앙정부에 보고를 했어요.
이에 대해 한국 정부 내무대신은 즉각 독도 영토 침탈을 단호하게 부정해서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하는 주장하는 것은 전혀 이치가 없는 주장이고 심히 경악할 일이다”고 항의하는 글을 남겼어요. 의정부 참정대신, 당시 의정대신은 궐석이었고 총리대신 서리를 참정대신이 맡고 있었는데 의정부 참정대신, 총리대신 서리는 “독도의 일본의 영지 운운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강력히 항의하고, 일본인의 동태를 다시 보고하도록 훈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 조선, 대한제국 정부의 항의 훈령 내용입니다. 그러나 한국 중앙 정부의 이러한 항의는 일본 정부에 외교 문서로 발송되지 못하고 서류로서만 남아서 지금 규장각에 보관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이 1905년 11월 18일 을사조약을 강제해서 한국 정부의 외교권을 강제로 침탈했고, 1906년 1월부터는 일제 통감부가 한국 정부의 외교권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의를 제출할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 때 강력히 항의한 것은 증거로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이 항의 사실은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皇城新聞)’에 당시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1905년 일본의 독도 침탈은 국제법상 불법의 도둑질한 탈취, 도탈(盜奪)을 시도한 것이고 완전히 무효입니다. 또한 이를 근거로 한 그 후의 모든 조치도 모두 무효입니다. 일본 외무성의 무주지를 합법적으로 편입했다고 하는 설명은 전적으로 거짓이고 허위의 설명입니다.
또한 주목할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1905년 1월 28일 독도를 “무주지”라고 주장 전제하면서 처음으로 일본에 새로이 영토 편입하고, 새로이 “다케시마”라고 이름을 붙인다고 의결한 것은 1905년 1월 28일 이전 시기까지 “독도”가 일본의 역사적 영토가 아닌, 일본의 역사적 고유 영토가 아님을 스스로 명백히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일본의 고유 영토였다면 지금에 주장하는 바와 같이 뭐 때문에 1905년 1월에 와서 한국 모르게 세계 모르게 도둑질로, 을 해가면서 침탈을 시도를 했겠습니까. 한국은 1910년에는 일제의 강점으로 아예 한반도 전체를 빼앗겼기 때문에 독도는 일본의 패망 후에야 한반도와 함께 회복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월이 35~6년 지나서 1945년 광복 후에 연합국은 1946년 1월 29일 연합국최고사령관 지령 제677호를 공포하여 독도를 한국 영토로 확인하고 독도를 한국에 반환했습니다.
5. 광복과 독도 영토 주권의 회복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명명백백한 대한민국의 완벽한 영토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이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려는 책략을 대한민국은 단호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대한민국의 이미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완벽한 영토입니다. 이것이 학문적으로 증명되는 진실입니다. 학문이라고 하는 건 진실과 진리를 밝히고 그것을 지키는 것인데, 독도는 학문적으로 100% 대한민국의 영유입니다.
독도 영유권을 '100' 으로 표시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유권 '100' 을 모두 갖고 있고, 일본은 영유권은 '제로' 인 채, 영유권 주장을 강력하게 갖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독도 침탈 전략의 하나로 1954년 9월 25일 대한민국 정부에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 위임하자고 제의했을 때, 당시 대한민국 변영태 외무장관은 1954년 10월 28일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은 구술서를 일본 정부에 보냈습니다.
일본 정부의 제안은 잘못된 주장, false claim을 법률적 위장, judicial disguise으로 꾸미려는 시도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은 독도에 대해 처음부터 영유권을 갖고 있으며, 한국은 어떠한 국제재판소에서도 그 영유권 증명을 구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영토 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가짜 영토분쟁'을 꾸며내고 있는 것은 일본이다.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출하자고 제안함으로써, 일본의 입지를 소위 독도 영토 분쟁과 관련하여 일시적으로라도 한국과 대등한 입지에 두려고 일본은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타협의 여지없이 완전하고 분쟁의 여지없는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 대하여 일본은 '유사 주장'을 설정하려고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1954년 당시 대한민국 외무장관의 답변은 오늘날에도 정당한 것입니다. 현재 일본 외무성의 국제 사법재판소행 제의는, 지금 제의를 하고 있는데 일본 외무성의 1954년 9월 25일자의 주장을 되풀이 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서 재판을 해가지고 어떻게 강제로라도 끌려가지 않을까, 일본이 국력이 센데 이게 불리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이 많은데 우리가 똘똘하기만 하면 전혀 그럴 염려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세계 체제는 최고의 주권체를 국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UN도 지구상에 있는 국가들의 회의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UN안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는 먼저 회원국들에게 우리 국제사법재판소의 관할권 안에 들어와서 그 재판을 받, 받을 용의, 의사가 있는가를 질문을 합니다. 많은 나라들이 가입했고 또 많은 나라, 일부 나라들은 가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우리 대한민국은 국제사법재판소 관할에 들어가기를 거절했어요.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신청했습니다. 따라서 국제사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는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재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걱정을 합니다. 이게 무력 충돌 등 분쟁이 생기면 안전보장이사회가 강제로 끌고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전쟁을 하면은 물론 평화유지군도 오고 견제는 할 수 있는데요. 영유권에는 손을 못 댑니다. 만일에 그게 걱정이 되면 외무장관의 이름으로 어느 장관이든지 안전보장, UN 안전보장 이사회의 앞으로 독도를 둘러싸고 문제나 분쟁이나 전쟁이나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경우에도 독도 영유권은 국제 재판에 붙이지 않겠다, 국제 사법 재판소에 가지 않고 우리가 우리 힘으로 지키겠다는 편지만 하나 보내면은 안전보장이사회도 관할권이 없어요.
그렇게 국가 주권은 현 세계 체제에서는 최고의 권력체입니다. 따라서 국력을 강하게 하고 이것을 우리 실력으로 우리의 국가 의지로 우리 국민 의지로 지키려고 해야지 다른 것은 지금 별로 큰 힘을 갖지 못하게 되어있어요. 한국은 국제법상 이미 한국 영토로 공인된 '독도'를 다시 국제 재판의 도마 위에 놓으면 어떻게 되는가? 독도영유권 100은, 지금은 100을 다 갖고 있는데 일본의 주장에 동의를 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자마자 국제사법재판소에 입장은 일단 대등하게 놓고 그때부터 심의를 하니까 50 대 50으로 취급되어 한국은 영유권 100에서 50을 상실하고 일본은 영유권 제로에서 즉각 50을 얻어 대등한 입장에서 국제 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짓을 할 국민, 국가, 학자 어떤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러한 어리석은 일을 할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영토적 야욕으로 20세기 초기에 한국을 침략할 때, 독도가 한국의 가장 동쪽에 있는 외로운 무인도의 한국 영토이므로 1905년 일본은 몰래 먼저 침탈했었고, 1910년 한반도 전체를 침탈했습니다. 일본의 독도 침탈과 한반도 침탈은 하나로 연결된 연쇄 고리입니다.
연합국은 1945년과 1946년에 일본이 침탈한 모든 한반도와 그 부속섬들을 한국에 반환해줬습니다. 대한민국은 재 독립하자 독도도 그 결과로 수복하고, 현재 불가분리의 불가분량의 고유 영토로 통치하고 있습니다. 실효적 점유를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로 통치를 하고 있는겁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독립의 상징이고 영토 주권의 상징입니다.
독도를 빼앗겨서 대한제국도 이어서 뺏겼고, 만일에 연합국이 이렇게 국제법으로 보장까지 해주면서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규정해 준 것을 그것마저 못 지키고 빼앗긴다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겠어요. 대한민국은, 독도는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 주권의 상징입니다.
오늘날 일본 외무성이 또 다시 독도를 침탈하려고 시도하고, 장기적으로는 꼭 이를 침탈해보려고 일본 초등, 중등, 고등학교 학생 교과서에까지 넣으면서 주입식 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일본 정부가 구 일본 제국주의 침략 외교를 대한민국에 적용하려고 획책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착오적인 신제국주의적 독도 침략 침탈 정책을 국제적으로 연대해서 비판하고, 독도 침탈 정책을 폐기하도록 다 함께 권고해야 할 것이며,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기의 영토 주권, 자기 주권의 일부인 주권의 상징인 독도를 굳건하게 수호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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